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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도 실수한 대왕암, 그럴만 하겠네

기영석 2010. 12. 20. 00:12

1박 2일도 실수한 대왕암, 그럴만 하겠네

오마이뉴스 | 입력 2010.12.19 11:37 | 수정 2010.12.19 13:05 | 누가 봤을까? 10대 남성, 울산

[오마이뉴스 성낙선 기자]

11월 14일(일)





갯바위. 한 마리 용이 바다를 헤엄쳐 가는 모양이다.

ⓒ 성낙선





해국이 피어나는 갯바위. 외모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 성낙선

'동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푸른 바다'와 다양한 모양을 한 '갯바위'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게 갯바위다. 동해의 갯바위는 전국의 바닷가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적인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동해는 우리나라 갯바위들을 해안선을 따라 일렬로 전시해 놓은 대규모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갯바위는 바위 절벽과 달리 바닷가 가까운 곳, 수심이 낮은 바다 위에 몸을 드러낸 바위들을 말한다. 동해의 맑고 푸른 바닷물 위로 희거나 혹은 검은 몸체를 드러낸 바위들이, 여러 가지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근거리에 위치한 바위들조차 서로 다른 성분과 모양을 하고 있어, 어떻게 해서 이런 구성이 가능해질 수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갯바위야말로 동해를 동해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 중에 하나다. 개개의 바위들을 따로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는 비록 그 규모나 특징을 크게 내세우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바위들이 가지고 있는 개개의 특성을 연이어 보거나, 사진을 보듯이 한꺼번에 들여다봤을 때는 그 풍성함과 다채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갯바위들을 감상하는 데 자전거여행처럼 좋은 여행 방식도 없다.

오늘 동해를 여행하면서 보게 되는 갯바위들 또한, 서해나 남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을 보여준다. 돌이 풀과 꽃을 피워내고, 그 돌이 살아서 마치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바위들이 마치 내게 '이것이 바로 동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바위 위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갈매기들

ⓒ 성낙선





바위가 엿가락처럼 누워 있는 주상절리.

ⓒ 성낙선

갯바위 없이 동해를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여정은 경주시까지다. 거리는 멀지만 해안선이 그리 복잡하지 않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진하해수욕장 곁으로 강이 흐른다. 온산읍을 이리저리 휘젓고 내려온 회야강이다. 해수욕장 끝에서 그 강을 건너는데, 건너편으로 항구가 내려다 보인다. 강양항이다.

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 사이에 하늘 높이 육교가 걸쳐져 있다.그 육교 위로 올라서자 바다는 물론이고, 항구와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광경이 꽤 인상적이다.항구를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특히 등대 같은 건 언제나 밑에서 올려다 보기 마련이다.

애초 그럴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이 육교가 잘 만들어진 또 하나의 전망대처럼 보인다. 전망대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전망대들이 지천인 마당에, 이 육교야말로 전망대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강양항을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온산국가산업단지 앞을 지나가는 길이다. 이 길에서는 공장 건물 외 별다른 특색을 찾아보기 힘들다. 공단을 벗어날 때까지 쉼 없이 페달을 밟는다. 앞으로 울산을 지나 포항을 지나갈 때까지는 이런 공단길이 수시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길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록정감이 가는 길은 아니지만, 때때로 거리를 단축해주는 효과도 있다.

온산국가산업단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울주군 경계선을 넘어선다. 울주군으로 들어서면, 이번에는 울산용연공업단지다. 공단을 벗어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공단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이유가 없어, 계속해서 페달을 밟는 데 집중한다. 어느 순간부터 지루함이 밀려오지만, 중간에 장생포항 같은 항구가 있어 그런 대로 참고 견딜 만하다.





강양항

ⓒ 성낙선

'포경기지'에서 '고래문화특구'로 거듭나는 장생포

장생포항까지 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장생포항은 과거 고래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다. 지금은 고래잡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더 이상 그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고래탐사선을 운영하는 등 고래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다 좋은데 항구 건너편으로 공업단지가 빤히 건너다보이는 게 가슴이 아프다. 거대한 공업단지 시설물들로 항구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모양새다. 매연인지 안개인지 하늘이 뿌옇게 내려앉아 있는 광경이 마음을 더욱 더 무겁게 짓누른다. 장생포는 현재 항구 주변이 공업단지로 완전히 포위가 되어 있는 상태다.

항구 가까이 고래박물관이 있다. 이곳의 전시실에서 포경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포경의 역사는 물론, 그때 사용했던 물건들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돌고래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고래 모형이나 머리뼈 같은 것들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이다.

마침 주말을 맞아 매표소 앞이 입장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박물관 야외광장 앞으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공업단지로 인해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장생포항을 떠나서는 울산 시내를 관통하는 태화강을 건넌다.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명촌교에서부터 방어진항까지 강변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깔려 있다. 그 자전거도로를한참을 달려가다 보면, 도로 양쪽으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들여다보인다. 의외의 풍경이다.

공장 주변 풍경이라 꽤 을씨년스러울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동안 사진이나 텔레비전 영상으로만 보아 왔던 풍경이 바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다.공장 마당에 수출 대기 중인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들이 줄맞춰 늘어서 있다.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물량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자동차에 호감을 느껴보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다. 대자연을 바라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인간의 능력이라는 게 거의 무한대다. 그 능력을 좀 더 바람직한 일에 사용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장생포고래박물관. 포경선 전시물

ⓒ 성낙선





태화강 강변 자전거도로와 갈대밭

ⓒ 성낙선

대왕암, 이름뿐만이 아니라 웅장함에서도 대왕격

장생포항을 떠나 태화강 하구에 위치한 방어진항을 돌아가면, 동해 바닷가 갯바위의 '대왕'격이라고 할 수 있는 대왕암공원이 나온다. 대왕암공원은 바다 한가운데로 돌출해 있는 해안선을 돌아가며,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을 한 바위들이 군집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대왕암은 '신라시대 문무대왕의 왕비가 죽어서 호국룡으로 남아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는 바위 섬 아래 묻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말하자면 문무대왕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수중릉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경주시에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과 헛갈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할 수 있는 여지는 또 있다. 문무대왕 수중릉 역시 울산의 대왕암과 마찬가지로 '대왕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탓이다. 하지만 이 둘은 위치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그러니 서로를 혼동하지 않는 게 좋겠다.

대왕암공원의 바위들은 웅장함이나 품격 같은 면들에서 다른 곳의 바위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공원 안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바위들이 거의 모두 제 이름값을 하고 있다. 남근바위, 탕건바위, 자살바위 등등…. 고유한 이름이 붙은 바위만 해도 십여 개다.그 바위들이 대부분 '국보'급이다.

바닷가 언덕 위 해송숲도 일품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살아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다. 그 풍경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공원이 겉보기와는 달리 무척 넓다. 공원 입구에서 해안 바윗길을 따라가면, 일산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대왕암공원. 구름 다리 건너 바위 섬이 대왕암.

ⓒ 성낙선





대왕암공원 안 바위 위에 올라선 사람들.

ⓒ 성낙선





대왕암공원 안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 성낙선

대왕암을 떠난 뒤로도, 동해를 특징짓는 바위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비록 그 이름이 분명치 않은 바위들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 바위들 하나하나 이 세상 그 어느 바위들보다 개성이 뚜렷해 보인다. 모두 이곳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바위들이다.

이후로 경주시로 들어설 때까지도 내 눈에 들어오는 것 모두 갯바위뿐이다. 어느새 그 독특한 매력에 빠져 바닷가 구석구석, 갯바위 하나하나 알뜰히 더듬고 다니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오늘, 동해가 내게 색다른 재미 하나를 안겨준다.

부산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경주시다. 동해로 들어서면서 확실히 여행에 속도가 붙고 있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거리가 단축되는 게 눈에 보인다. 여행이 신명을 되찾아가고 있다. 오늘 여행은 경주시 양남면의 읍천항까지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3km, 총누적거리는 4161k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