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100일> ① 무엇이 재앙을 키웠나
연합뉴스 | 최찬흥 | 입력 2011.03.06 06:02
공장식 밀집사육.안이한 초기대응이 `빌미'
매뉴얼 미비.혼선..2차 환경오염 우려까지
< ※편집자주 = 소와 돼지 등 가축 약 346만마리의 살처분과 매몰지 주변의 침출수 유출 공포를 몰고 온 구제역이 오는 10일로 100일을 맞는다. 하지만 전례없는 대규모 살처분으로 축산업이 사실상 와해위기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식수원마저 침출수로 오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어지는 등 구제역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특히 기온상승과 함께 장마철이 시작되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연합뉴스는 이번 사태의 배경과 원인, 후유증과 축산업계의 재기 움직임 등을 점검해 3건의 기획기사로 송고한다. >
(전국종합=연합뉴스) 구제역 발생 100일을 맞는 한국 축산의 현주소는 '참담' 자체다.
경북 안동을 시발로 한 구제역은 지난 4일 기준으로 전국 11개 시.도 75개 시.군.구로 번져 돼지의 경우 전체 사육두수 988만마리의 33.4%인 330만마리가, 소는 335만마리중 4.5%인 15만마리가 각각 살처분됐다.
최대 피해를 입은 경기도의 경우 전체 돼지의 71.0%인 166만3천마리, 소의 13.4%, 6만7천마리를 매몰해 젖소 2만마리를 긴급수입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는 등 축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을 맞았다.
'구제역 대재앙'은 밀집사육 등 후진국형 사육방식과 안이한 초기대응이 빌미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여기에 백신 접종을 실기(失期)한데다 구제역 긴급행동지침(매뉴얼)의 미비에 따른 혼선이 겹치며 2차 환경오염의 우려까지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장식사육..축산단지로 밀집해 전파속도 빨라 = 축산법에 따른 적정 사육면적 지침은 6개월 미만 한우송아지 2.5㎡, 젖소송아지 4.3㎡, 한우성우 10.0㎡, 젖소 16.5㎡, 60㎏이상 비육돼지 0.8㎡ 등으로 돼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 우선시되면서 좁은 축사에 밀집사육이 이뤄지는 등 관련지침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
경기도 농정국 관계자는 "공장식 사육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며 가축의 면역력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구제역 전파속도도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며 "농업선진국들은 동물복지 차원에서 밀집사육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기아.갈증, 불편함,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 5개 자유를 동물복지 개념으로 정해 축산정책을 펴고 있다.
EU는 1999년 이후 가축보호.후생조약 의정서를 채택하고 송아지는 생후 8주가 지나면 우리에서의 사육을 금지하고 어미돼지도 개별 우리에서 기르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독일의 일부 주에서는 1ha 농지에 소 3마리, 돼지 14마리, 닭 200마리 이내로 사육가축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식 사육보다는 축산농가가 단지를 이루는 것이 구제역 확산의 주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국립축산과학원 허태영연구관은 "좁은 국토에 축산농가가 옹기종기 모여있고 도로망도 좋아 구제역이 빠르게 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한우단지인 경북 경주시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안강읍의 경우 800여가구에서 소 1만7천600마리를 길러 경주시 읍.면중 가장 많은 두수를 사육하고 있다. 안강읍 육통리는 140농가가 5천여마리를, 사방리는 150가구가 5천여마리를 키우고 있다.
항생제 과다사용이 구제역 발생을 부채질했다는 일부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축산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축산과학원 허 연구관은 "국내 축산농가가 배합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먹이는 등 항생제 투여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항생제는 특정 성장시기에 투여하고 항생제 과다사용으로 구제역에 쉽게 걸렸다는 증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조사결과 2009년 축산용 항생제 사용량은 998.1t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18% 줄었고, 2001년에 비해서는 37%나 감소했다.
◇안이한 인식..초기대응 미흡 =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 1월 25일 구제역 확산원인과 전파경로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하면서 땜질식 처방을 인정했다.
검역원에 따르면 작년 11월23일 안동의 돼지농가에서 첫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으나 당국은 간이키트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됐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결국 같은달 28일 해당농가는 구제역 양성 확정판정을 받았다.
이후 당국은 부랴부랴 차단방역에 나섰지만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국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검역원은 "과거 구제역은 발생시기가 3,4,5월로 소독 등 차단방역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구제역은 겨울에 발생한 데다 전국에 한파가 지속돼 소독 등 차단방역에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신 접종 시기를 놓친 것이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지난해 12월25일 경북 및 경기 지역 일부를 대상으로 처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을 때만해도 1∼2주만 지나면 구제역은 잡힐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후 서너 차례 추가로 백신대상 지역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전국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신 맞은 소는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축산농가의 우려와 백신 접종땐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당국자들의 오판이 빚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청정국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소나 돼지를 거의 수출하지 않는 만큼 청정국 지위 유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매뉴얼 미비..시행 혼선 = 농림부는 살처분 매몰지 선정과 관련해 매뉴얼에서 '집단가옥.수원지.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않은 곳으로,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를 제시했지만 환경부는 '지하수.하천.수원지.집단가옥으로부터 이격(하천.수원지 등과 30m이상)한 곳'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하천.수원지 30m 이격' 준수 여부를 놓고 매몰현장뿐 아니라 경기도 구제역재난안전대책본부 조차 적잖은 혼선을 빚었고, 이런 와중에서 소하천이나 도랑(구거)으로부터 30m 이내에 매몰한 곳이 경기도내에서만 149곳이나 됐다.
침출수에 따른 지하수 오염을 측정하기 위한 관측정은 매몰지 5m내에 두도록 돼 있는데 설치시기를 `매몰작업후'라고만 명시해 4일 현재 경기도내 2천245개 매몰지 중 205곳에만 설치됐다.
가스배출관도 90㎡당 4~5개 세우도록 했지만 단면도에는 2개만 표시돼 있어 혼선이 빚어졌고, 저류조의 경우에도 용량 0.5㎡짜리를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매몰 가축수가 많을 경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경기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24시간안에 매몰작업을 끝내야 하는 시간 제한때문에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 용인시 백봉리와 고안리, 근삼리 등 돼지 매몰지 3곳은 지하수가 고인 곳에 비닐조차 깔지 않고 돼지 6천700여마리를 묻은 사실이 확인돼 매몰지 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chan@yna.co.kr
(끝)
매뉴얼 미비.혼선..2차 환경오염 우려까지
< ※편집자주 = 소와 돼지 등 가축 약 346만마리의 살처분과 매몰지 주변의 침출수 유출 공포를 몰고 온 구제역이 오는 10일로 100일을 맞는다. 하지만 전례없는 대규모 살처분으로 축산업이 사실상 와해위기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식수원마저 침출수로 오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어지는 등 구제역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특히 기온상승과 함께 장마철이 시작되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연합뉴스는 이번 사태의 배경과 원인, 후유증과 축산업계의 재기 움직임 등을 점검해 3건의 기획기사로 송고한다. >
(전국종합=연합뉴스) 구제역 발생 100일을 맞는 한국 축산의 현주소는 '참담' 자체다.
경북 안동을 시발로 한 구제역은 지난 4일 기준으로 전국 11개 시.도 75개 시.군.구로 번져 돼지의 경우 전체 사육두수 988만마리의 33.4%인 330만마리가, 소는 335만마리중 4.5%인 15만마리가 각각 살처분됐다.
최대 피해를 입은 경기도의 경우 전체 돼지의 71.0%인 166만3천마리, 소의 13.4%, 6만7천마리를 매몰해 젖소 2만마리를 긴급수입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는 등 축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을 맞았다.
'구제역 대재앙'은 밀집사육 등 후진국형 사육방식과 안이한 초기대응이 빌미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여기에 백신 접종을 실기(失期)한데다 구제역 긴급행동지침(매뉴얼)의 미비에 따른 혼선이 겹치며 2차 환경오염의 우려까지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장식사육..축산단지로 밀집해 전파속도 빨라 = 축산법에 따른 적정 사육면적 지침은 6개월 미만 한우송아지 2.5㎡, 젖소송아지 4.3㎡, 한우성우 10.0㎡, 젖소 16.5㎡, 60㎏이상 비육돼지 0.8㎡ 등으로 돼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 우선시되면서 좁은 축사에 밀집사육이 이뤄지는 등 관련지침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
경기도 농정국 관계자는 "공장식 사육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며 가축의 면역력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구제역 전파속도도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며 "농업선진국들은 동물복지 차원에서 밀집사육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기아.갈증, 불편함,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 5개 자유를 동물복지 개념으로 정해 축산정책을 펴고 있다.
EU는 1999년 이후 가축보호.후생조약 의정서를 채택하고 송아지는 생후 8주가 지나면 우리에서의 사육을 금지하고 어미돼지도 개별 우리에서 기르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독일의 일부 주에서는 1ha 농지에 소 3마리, 돼지 14마리, 닭 200마리 이내로 사육가축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식 사육보다는 축산농가가 단지를 이루는 것이 구제역 확산의 주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국립축산과학원 허태영연구관은 "좁은 국토에 축산농가가 옹기종기 모여있고 도로망도 좋아 구제역이 빠르게 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한우단지인 경북 경주시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안강읍의 경우 800여가구에서 소 1만7천600마리를 길러 경주시 읍.면중 가장 많은 두수를 사육하고 있다. 안강읍 육통리는 140농가가 5천여마리를, 사방리는 150가구가 5천여마리를 키우고 있다.
항생제 과다사용이 구제역 발생을 부채질했다는 일부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축산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축산과학원 허 연구관은 "국내 축산농가가 배합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먹이는 등 항생제 투여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항생제는 특정 성장시기에 투여하고 항생제 과다사용으로 구제역에 쉽게 걸렸다는 증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조사결과 2009년 축산용 항생제 사용량은 998.1t으로 전년도와 비교해 18% 줄었고, 2001년에 비해서는 37%나 감소했다.
◇안이한 인식..초기대응 미흡 =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 1월 25일 구제역 확산원인과 전파경로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하면서 땜질식 처방을 인정했다.
검역원에 따르면 작년 11월23일 안동의 돼지농가에서 첫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으나 당국은 간이키트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됐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결국 같은달 28일 해당농가는 구제역 양성 확정판정을 받았다.
이후 당국은 부랴부랴 차단방역에 나섰지만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국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검역원은 "과거 구제역은 발생시기가 3,4,5월로 소독 등 차단방역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구제역은 겨울에 발생한 데다 전국에 한파가 지속돼 소독 등 차단방역에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신 접종 시기를 놓친 것이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지난해 12월25일 경북 및 경기 지역 일부를 대상으로 처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을 때만해도 1∼2주만 지나면 구제역은 잡힐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후 서너 차례 추가로 백신대상 지역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전국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신 맞은 소는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축산농가의 우려와 백신 접종땐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당국자들의 오판이 빚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청정국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소나 돼지를 거의 수출하지 않는 만큼 청정국 지위 유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매뉴얼 미비..시행 혼선 = 농림부는 살처분 매몰지 선정과 관련해 매뉴얼에서 '집단가옥.수원지.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않은 곳으로,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를 제시했지만 환경부는 '지하수.하천.수원지.집단가옥으로부터 이격(하천.수원지 등과 30m이상)한 곳'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하천.수원지 30m 이격' 준수 여부를 놓고 매몰현장뿐 아니라 경기도 구제역재난안전대책본부 조차 적잖은 혼선을 빚었고, 이런 와중에서 소하천이나 도랑(구거)으로부터 30m 이내에 매몰한 곳이 경기도내에서만 149곳이나 됐다.
침출수에 따른 지하수 오염을 측정하기 위한 관측정은 매몰지 5m내에 두도록 돼 있는데 설치시기를 `매몰작업후'라고만 명시해 4일 현재 경기도내 2천245개 매몰지 중 205곳에만 설치됐다.
가스배출관도 90㎡당 4~5개 세우도록 했지만 단면도에는 2개만 표시돼 있어 혼선이 빚어졌고, 저류조의 경우에도 용량 0.5㎡짜리를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매몰 가축수가 많을 경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경기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24시간안에 매몰작업을 끝내야 하는 시간 제한때문에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 용인시 백봉리와 고안리, 근삼리 등 돼지 매몰지 3곳은 지하수가 고인 곳에 비닐조차 깔지 않고 돼지 6천700여마리를 묻은 사실이 확인돼 매몰지 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c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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