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고봉과 퇴계의 '사칠논변'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이들의 사이에 일어났던 학문적인 토론과
개인적 견해의 발전 과정은 알고 있다고 속으로는 자신하고 있었죠.
설령 잠시 잊어버리더라도 책을 찾아 한 번만 읽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교만도 함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일상 속에 부대끼면서 '사칠논변'은 거의 잊어버렸고,
새해 들어 몸과 마음을 다잡는 기분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이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읽어내려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책의 내용이 어렵고 지루할 때면 혼자서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다잡곤 합니다.
'이 책을 지은 사람도 있고, 또 옮긴 사람도 있는데 이것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한단 말인가!'
편지란 것이 개인의 소소한 신변잡기부터 아주 풍부하고 다양한 생활이 담겨있기에
읽다보면 그들의 본 모습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끝까지 산림처사로 남은 남명이
관직과 산림을 오간 퇴계보다 더 의리를 중시했다는 세간의 평가나,
고봉의 학설로 인해 퇴계가 자신의 견해마저 수정하게 했다는
사칠논변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너무나 단면만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관직을 물러나면 더 높은 관직을 부여하는 임금으로 곤혹스러운 퇴계,
그런 퇴계를 이해하면서도 관직에서 쉽게 물러나지 못하는 고봉,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 직접 만나면 세인들의 눈길이 두렵다고 만나지 않는 퇴계,
자신의 성학십도를 고봉에게 보여주면서 되도록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먼저 고칠 부분을 말해달라는 노학자 퇴계의 고봉에 대한 믿음,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대해 그 원전이 어디며 인용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요즘 학위논문보다 더 엄격한 자기 공부의 자세,
부친의 비명을 새로이 적어야 하는데 그 적임자가 고봉이라고 글을 부탁하는 퇴계,
성학십도 이후 고봉이 임금에게 퇴계를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말에
아직도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냐고 말하는 퇴계,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 처해 제대로 처신하라고 당부하는 퇴계,
재주가 아무리 비상해도 술을 많이 먹고 공부를 안하면 문제가 된다고 큰 훈계를 내리는 퇴계,
퇴계의 공부하는 자세는 지금도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 같아 한 부분을 인용해봅니다.
서양의 분석철학도 이렇게까지 할까 할 정도로 엄밀한 분석이기도 합니다.
사칠논변에서 고봉의 의견에 대해 이렇게 퇴계는 답을 내놓습니다.
첫째, 그대의 말이 본래 잘못이 없는데 제가 착각하여 엉뚱하게 논한 것
둘째, 그대의 편지를 받고서 제 말이 마땅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
셋째, 그대의 편지 내용이 제가 들은 것과 근본이 같아서 다름이 없는 것
넷째, 근본은 같지만 다르게 나아간 것
다섯째, 의견이 달라 끝내 따를 수 없는 것
멋지지 않습니까?
책 하나를 두고서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책 속에 담긴 교훈 중 하나라도 감명을 받았다면
그 이상 행복할 수는 없겠죠.
출처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원문보기▶ 글쓴이 : 幽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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