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수필

그 옛날을 생각해 보자~

기영석 2015. 9. 25. 12:36

우리 어릴적에 이런 광경은 수없이 보아왔다.

그때는 수리 시설이라곤 생각도 못했고 논떼기 마다 웅덩이를 파서

물꼬리(뚜레박)로 밤잠도 설치면서 물을 퍼야했다.

 

아마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농촌에선 물꼬리로 물을 퍼야한다.

날씨가 어느해고 가믐이 심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는 쌀밥을 먹을수가 없었다.

일꾼(머슴)을 어른 또는 ~~상 김씨면 김상 이씨면 이상이라 했는데 여기선 어른이라고 하겠슴

어른을 두고있는 우리집에서도 물꼬리는 필수고 팔이 떨어질정도로 많이 아파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른과 나는 매일같이 웅덩이에 물을 퍼야했고

 

당시만해도 농촌에서 땅을 많이 갖이고 있는 사람이 부자소릴 들었고

특히 수답(물을 펄수있는논)이 많아야 논이라고 하지 봉답(물이 전혀 없고

하늘만 바라보는 논)은 쓸수 없는 땅이라고 값은 수답의 3분의1값도 받을수 없었다.

요즘은 수리시설이 너무 잘되어있어서 오히려 당시의 봉답논이 더 비싸게 거래된다.

 

수답에 모를 심을땐 물한방울이 아깝고 물을 조금펀후 호메이(호미)로 땅을 파면서

모를 심어야하고 모를 심어놓아도 매일 수확할때까지 물꼬리질을 하였다.

아예 집에는 들어가지않고 들(들판) 웅덩이 옆에서 나무 가지나 포장(햇빛가리게)을 치고

새우잠을 설치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수가 있었다.

 

밥은 꽁당 보리밥(보리로만 된밥) (버리라고도함)은 삼시 세끼와 약간의

개떡(보리 찧을때 뒤로 나오는 가루로 만든 빵) 또는 더 보드라운 가루로 만든

장떡과 미렁빈(밀가로 솥뚜껑을 엎어놓고 팥을 넣은후 구운 전) 보통 이런것들을

새참으로 많이 먹었다. 당시만해도 쑤벙이(물이 많이 고이고 빠지는 논) 있는논은

일등 호답이라고 해서 부잣집들만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이지만 나락 농사가 잘되어야 지붕을 다시 덮는데 흉년이 들면

집을 영개(짚으로 엮어 만든 이엉)로 덥을수가 없어 가난한 집은 물이 샌다.

동네에는 초갓집이 전부였고 삼칸집이라서 6촌 8촌까지 한집에 살았다. 나중에 형편이

좀 낳아지면 조그마하게 집을 지어서 시간(부모와 형제로부터 분가하는것)을 내보내는게

당시 풍습이었다.

 

자식들도 가난한 집은 7~12명의 아들 딸들을 두었고 부잣집들은 자식도 5, 6명만 두었다.

그래서 자식이 많아 성장한 집은 일하기가 쉬웠고 자식을 두지않을땐 소박(시가에서 쫓겨나는것)

당하게 되고 평생 어둠속에서 눈물로 한 평생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 정도 잘사는 집의 남자들은

작은이로 애첩을 한 두명 두고 자식을 여럿을 두게되어 그자식은 서파라고해서 제사도 저멀리서

지내야하고 자식의 차별대우를 밭는게 후처의 자식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서파(후처나 애첩이 낳은 자식)들이 출세하고 잘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집의 장손이나 장남은 일도 시키지 않고 놀고 먹거나 학교를 시켰다.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은 자식의 대우를 못받고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변하여 물꼬리로 물푸는

일은 없고 양수시설이 너무 잘되어 강물을 퍼올려 매년 풍년이 되고 봉답 논엔 양수기가

등장하여 풍년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서 농촌엔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스레트 지붕으로 담장은 시멘트 벽돌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이렇게 잘 살아가는것도

박정희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추진력이라고 해야한다. 농촌이 잘살아야 한다며 새마을 운동을

펼치고 외국으로 수출도 많이하고 외화를 벌기 시작해 세계 강대국의 주춧돌을 쌓으신 분이다.

 

군사 독제라고 하는이도 있으나 나라 사정으로 보면은 꼭 필요한 존경하는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역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말한다. 당시 피해자도 있었다고 말하는이가

있으나 대다수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을 잊지 못한다. 지금 현제 딸인 근혜님이 대통령을

하시는데 이건 당연하다고 본다. 

 

국민을 가난과 불행에서 살려내신 분이기에 근혜님도 그런면에서 은혜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그옛날 이라고 해야하는데 가난에서 벗어날수없는 상황이고

있는자들의 횡포도 고리채 정리로 가난에서 해방 시키신 분이시다.

 

그런데 지금은 집권욕에만 혈안이 되여서 있는자들은 돈을 풀어서 지방자치화에

뛰여들어 모든 감투는 다들 찾이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참 더러운 세상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언제 어떤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 권력과 금력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때 많이 베풀고 사람답게 살았으면 한다.

 

지자체도 개혁을 해야 국민의 부담이 줄어드는데

군의원 도의원 과연 필요한가를~ 단체장 선거제도 없어야하는데...

그 옛날 굶주렸다가 이제 살만하니까 별이별 제도를 만들어 놓고

밥 그릇 싸움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주민을 괴롭히는 과감한 지자체 개혁을~~~

다음 국회의원도 주민을위해 봉사하고 어두운곳도 찾아주는 사람을 택한다.

그옛날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른과 물꼬리로 물푸는 일은 없기 바라본다. 

 

오늘은 여기서 접는다.          - 기  영 석- 


우리 어릴적에 이런 광경은 수없이 보아왔다.

그때는 수리 시설이라곤 생각도 못했고 논떼기 마다 웅덩이를 파서

이럴게 물꼬리(뚜레박)로 밤잠도 설치면서 물을 퍼야했다.

 

아마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농촌에선 물꼬리로 물을 퍼야한다.

날씨가 어느해고 가믐이 심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는 쌀밥을 먹을수가 없었다.

일꾼을 두고있는 우리집에서도 물꼬리는 필수고 팔이 떨어질정도로 많이 아파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일꾼과 나는 매일같이 웅덩이에 물을 퍼야했고

 

당시만해도 농촌에서 땅을 많이 갖이고 있는 사람이 부자소릴 들었고

특히 수답(물을 펄수있는논)이 많아야 논이라고 하지 봉답(물이 전혀 없고

하늘만 바라보는 논)은 쓸수 없는 땅이라고 값은 수답의 3분의1값도 받을수 없었다.

요즘은 수리시설이 너무 잘되어있어서 오히려 당시의 봉답논이 더 비싸게 거래된다.

 

수답에 모를 심을땐 물한방울이 아깝고 물을 조금펀후 호미(호메이)로 땅을 파면서

모를 심어야하고 모를 심어놓아도 매일 수확할때까지 물꼬리질을 하였다.

아예 집에는 들어가지않고 들(들판) 웅덩이 옆에서 나무 가지나 포장(햇빛가리게)을 치고

새우잠을 설치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수가 있었다.

 

밥은 꽁당 보리밥(보리로만 된밥) (버리라고도함)은 삼시 세끼와 약간의

개떡(보리 찧을때 뒤로 나오는 가루로 만든 빵) 또는 더 보드라운 가루로 만든

장떡과 미렁빈(밀가로 솥뚜껑을 엎어놓고 팥을 넣은후 구운 전) 보통 이런것들을

새참으로 많이 먹었다. 당시만해도 쑤벙이(물이 많이 고이고 빠지는 논) 있는논은

일등 호답이라고 해서 부잣집들만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이지만 나락 농사가 잘되어야 지붕을 다시 덮는데 흉년이 들면

집을 영개(짚으로 엮어 만든 이엉)로 덥을수가 없어 가난한 집은 물이 샌다.

동네에는 초갓집이 전부였고 삼칸집이라서 6촌 8촌까지 한집에 살았다. 나중에 형편이

좀 낳아지면 조그마하게 집을 지어서 시간(부모와 형제로부터 분가하는것)을 내보내는게

당시 풍습이었다.

 

자식들도 가난한 집은 7~12명의 아들 딸들을 두었고 부잣집들은 자식도 5, 6명만 두었다.

그래서 자식이 많아 성장한 집은 일하기가 쉬웠고 자식을 두지않을땐 소박(시가에서 쫓겨나는것)

당하게 되고 평생 어둠속에서 눈물로 한 평생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 정도 잘사는 집의 남자들은

작은이로 애첩을 한 두명 두고 자식을 여럿을 두게되어 그자식은 서파라고해서 제사도 저멀리서

지내야하고 자식의 차별대우를 밭는게 후처의 자식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서파(후처나 애첩이 낳은 자식)들이 출세하고 잘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집의 장손이나 장남은 일도 시키지 않고 놀고 먹거나 학교를 시켰다.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은 자식의 대우를 못받고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변하여 물꼬리로 물푸는

일은 없고 양수시설이 너무 잘되어 강물을 퍼올려 매년 풍년이 되고 봉답 논엔 양수기가

등장하여 풍년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서 농촌엔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스레트 지붕으로 담장은 시멘트 벽돌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이렇게 잘 살아가는것도

박정희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추진력이라고 해야한다. 농촌이 잘살아야 한다며 새마을 운동을

펼치고 외국으로 수출도 많이하고 외화를 벌기 시작해 세계 강대국의 주춧돌을 쌓으신 분이다.

 

군사 독제라고 하는이도 있으나 나라 사정으로 보면은 꼭 필요한 존경하는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역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말한다. 당시 피해자도 있었다고 말하는이가

있으나 대다수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을 잊지 못한다. 지금 현제 딸인 근혜님이 다음 대통령

1순위라고 하는데 이건 당연하다고 본다. 

 

국민을 가난과 불행에서 살려내신 분이기에 근혜님도 그런면에서 은혜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그옛날 이라고 해야하는데 가난에서 벗어날수없는 상황이고

있는자들의 횡포도 고리채 정리로 가난에서 해방 시키신 분이시다.

 

그런데 지금은 집권욕에만 혈안이 되여서 있는자들은 돈을 풀어서 지방자치화에 뛰여들어

모든 감투는 다들 찾이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느누가 대통령이 되든간에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할수있는 리드십을 갖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옛날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일꾼과 물꼬리로 물푸는 일은 없기 바라본다. 

 

오늘은 여기서 접는다.          - 기  영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