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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80만원에 뿔난 대학생들

기영석 2009. 12. 5. 16:41

등록금 80만원에 뿔난 대학생들

시사IN |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 입력 2009.12.05 07:55 | 누가 봤을까? 20대 남성, 전라

겨울학기에 접어든 독일 대학가가 소란스럽다. 학·석사(BA·MA) 학제로의 전환 반대, 등록금 징수 폐지, 수업환경 개선, 입학정원제 폐지 등 각종 요구사항을 내걸고 학생 시위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도 독일 대학생 25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교육 스트라이크'가 벌어졌다. 최근 '11월 사태'는 일종의 '후속 시위'이다.

이번 시위는, 지난 11월 초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의 빈을 비롯한 여러 도시 학생들이 '대학은 불타고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벌인 스트라이크로 촉발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뮌헨·베를린·함부르크 등 20여 대학 학생들이 연계 시위를 벌이자 11월 중순까지 모두 50여 대학에서 철야 농성과 가두 시위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11월17일, 전국 41개 도시에서 8만5000여 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또한 11월21일에도 슈투트가르트에서 5000여 대학생이 거리에서 연좌농성을 하는 등 열악한 대학교육 상황에 대한 항의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11월24일에는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대학총장회의(HRK) 회의장을 점거하기도 했다.





11월17일 독일의 41개 도시에서 8만5000여 대학생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위)와 철야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11월에 시작된 교육 스트라이크는 이제 시작이다. 학생들은 11월30일~12월6일을 '행동 주간'으로 선언하고 전국적 차원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런 움직임은 12월16일 드레스덴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16개 주정부 총리가 참석하는 가운데 열릴 '독일교육정상회의' 즈음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위의 경우 아직 학생 참여율이 크게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학술노조(GEW)·독일학생조합(DSW)·대학생조직연맹(FZS)·독일노동총연맹(DGB)·녹색청년그룹·좌파당(Die Linke) 등이 후원하고 있어 상당한 폭발력을 지닌다는 평가다.

학생들이 대규모 스트라이크를 연속적으로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당 농성과 가두 시위에 나선 뮌헨 루드비히막스밀리안 대학(LMU) 카타리나 마이어 씨(역사전공)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학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쳐나고, 등록금 및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BA·MA 학제 전환으로 수업 연한이 단축되는 바람에 학습량이 한꺼번에 폭증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현행 등록금 징수 폐지, BA·MA 학제 개선, 학자금 융자 인상 및 범위 확대, 열악한 강의실과 실험실 시설 개선 등을 요구한다. 현재 등록금을 징수하는 주는 전국 16개 주 가운데 바덴뷔르템베르크·바이에른 주 등 6개 지역이다. 나머지 10개 주는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 등록금은 주별로 학기당 300~500유로(약 80만원)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은 "이를 전면 폐지하고 무상교육을 실시하라"고 주장한다.

새로 도입된 BA·MA 학제에 대해서도 불만이 폭주한다. 원래 독일 대학의 학제(학위 제도)는 일반적으로 디플롬(문과 석사)·마기스타(이공계 석사) 시스템이었는데, 이를 이수하는 데 8~10학기가 소요되었다. 그러나 미국식 BA·MA 학제가 도입되면서 수업 연한이 6학기로 줄어들었다. 수업 연한을 1~2년이나 줄이면서 4~6개월의 실습기간을 학생에게서 박탈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이 줄어들면서 학습량이 폭증하는 바람에 연구 시간이 부족해졌을 뿐 아니라 세미나 시간 단축으로 대학이 '취업 준비생 양산 기구로 전락했다'며 분노한다. 파비안 베네비츠 '교육항의연대' 대변인은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라면서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대학생들의 시위에 곤혹스러워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

"학생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 11월17일 시위를 계기로 그동안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여오던 연방정부도 2010년 '연방교육진흥기금'의 학자금 융자액을 증액하기로 결정하는 등 학생들의 요구사항 일부를 수용할 태세이다. 대학의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각 주정부 가운데 니더작센 주는 당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학제 전환에 따른 학생들의 불만 가운데 일부를 개선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독일대학연맹의 베른하르트 켐펜 의장, 주정부 문교장관회의 헨리 테슈 의장, 페터 스트로슈나이더 교육위원회 회장 등도 한결같이 대학생들의 항의가 "이해된다"라며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아네테 샤반 교육부 장관은 학생 시위 직후 "학자금 융자 증액을 내년 10월1일부터 실시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국 200만 대학생 가운데 현재 51만명이 월 상한액 684유로의 융자금을 받는다. 이 돈은 졸업 후 상환해야 한다. 학자금 융자 예산은 연방정부가 65%, 각 주정부가 35%를 부담한다. 이와 별도로 지난 10월 출범한 기민·기사당과 자민당 연정은 대학생 10%에게 장학금을 매월 300유로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학생들의 관심을 끈다. 연방정부는 소요 예산액 3억6000만 유로(약 6120억원) 중 50%를 주정부가 부담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독일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BA·MA 학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는 199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유럽 47개국 교육부 장관 회의'에서 유럽 대학제도의 표준화를 목표로 합의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제도의 부분 개선으로 학생들의 학습량을 덜어줄 수 있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학의 입학정원 제한 철폐도 중요한 이슈다. "정원 제한으로 입학 대기 기간이 늘고 학교 간 전학이 어려워 학습 유연성을 빼앗기고 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현행 초·중·등 교육 학제(김나지움)를 오는 2013년까지 8학년으로 단축하면 '대학 입학 자격자'가 폭증할 것인데, 현행 대학 입학 정원으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부족한 대학 강의실과 세미나실의 증축, 연구시설 개선, 교수 증원 등으로 인해 연방정부는 앞으로 4년간 120억 유로(약 20조4000억원)의 교육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도 재정적자가 870억 유로(약 147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어 대학생들의 요구가 관철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독일 대학가의 진통이 이래저래 길어질 전망이다.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