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한미FTA는 불평등 협정이다
한국의 집권다수당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2011년 11월 22일 소수 야당의원들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자기들끼리만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서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 협정은 이달 15일 발효를 앞두고 있는데, 한국민들의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고, 특히 올해 4월 11일로 예정된 총선과 12월 19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승리하면 한미FTA를 해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미FTA에는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는 독소조항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ISD, 간접수용, 래칫, 네거티브리스트 방식의 서비스개방 등등이다. ISD는 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이 협정을 위반하여 법령, 정책 등을 시행함으로써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국내법원이 아닌 세계은행 산하 ICSID 등 중재기관의 중재를 통해 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협정은 해외투자자에게 간접수용에 해당하는 정부조치가 이루어졌을 때에도 보상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간접수용” 개념은 매우 불분명하고 광범위하며 한국 헌법에 어긋난다. 래칫조항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 해외투자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방 폭을 확대하거나 규제를 완화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로는 할 수 없게 만드는 조항이다. 서비스개방 네거티브리스트 방식은 개방을 금지할 서비스 분야를 열거하고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자동적으로 개방 대상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독소조항들은 한국정부가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 즉 복지증진, 중소기업 및 영세 상인보호, 생태환경 보존, 건강보건 보호, 노동기본권 보호 등을 위해서 행사해야할 공공정책권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또한 ISD는 해외투자자가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는 경우, 그것을 국제중재기구에서 판정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국가의 사법주권도 심각하게 침해한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이 조약을 1905년 일본이 강압적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에 버금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세계역사에서 유례없는 양적 고도경제성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질적으로는 재벌독점이 갈수록 심화하고 중소기업은 어려워지고 양극화는 깊어져서 다수 국민의 삶은 도리어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다. 그리하여 절대다수의 한국인은 재벌독점의 해소,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육성, 서민보호, 복지증진 등을 열망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실현하는데 한미FTA는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
예를 들면, 지난 해 한국 국회는 영세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구역 내에는 대기업의 유통점을 개설하지 못하게 입법을 했다. 그런데 이 법은 한미FTA(및 한EU FTA)에 위반되어 무력화 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국영화를 헐리우드영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극장에서 매년 일정 일수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쿼터를 시행하고 있는데, 래칫조항에 의하면 이 쿼터를 없애거나 줄일 수는 있어도, 아무리 한국영화산업이 망해간다고해도 스크린쿼터를 늘릴 수는 없다. 이로써 한국은 거의 영원히 한국 영화산업과 문화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FTA는 불평등 협정이다. 한국에서는 한미FTA가 신법 우선의 원칙과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국내 제정법과 동일하거나 이보다 더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미국에서 한미FTA는 연방법의 하위 법령일 뿐이다. 미국의 한미FTA 이행법안 102조(a)에는 “미합중국의 여하한 법령에 불합치 하는 협정의 규정 또는 여하한 자나 상황에 대한 동 규정의 적용은 효력을 가지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안 102조(c)에는 미합중국 이외의 어느 누구도 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하며 미국 연방 또는 주정부기관의 조치에 대해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다툴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투자자가 과연 미국 정부를 상대로 ISD 제소를 할 수 있는지 조차 의문이다.
나는 2006년 한미FTA 협상을 개시할 당시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자 법무부 장관이었다. 당시 국무위원 등 정부 고위관계자나 국회의원들조차 위 독소조항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나 자신도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법무부에 근무하는 검사들로부터 ISD 조항 등의 문제점을 보고받고서야 알게 되었고,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한미FTA는 한국 국민은 물론 지도층들에게조차 문제점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 졸속으로 체결된 것이다. 또한 한미FTA 체결 후 새롭게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에 유리하게 협정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지금에 와서는 국민들이 협정의 문제점들을 잘 알게 되었고,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한미FTA의 재협상 또는 폐기를 바라고 있다.
세계 각국은 서로 개방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 국의 주권존중과 호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한미FTA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불평등 협정이다. 한미FTA의 독소조항은 반드시 제거되어야한다. TPPA 협상에서 이런 우리의 뼈아픈 경험이 좋은 교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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