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 제맛은 비봉산 정상에서
한겨레 입력 2013.01.16 18:50
[한겨레][매거진 esc] 여행
제천 청풍호와 교동 벽화마을
한반도 남한땅 한복판에 자리잡은 거대한 호수 청풍호(충주호). 소양호에 이어 국내 둘째로 큰 호수다. 한겨울 "눈 덮인 호반 경치가 아주 기막히다"는 말을 듣고 충북 제천 청풍호를 찾았다. 시청 관광과 직원이, 여러 기막히게 아름다운 호반 풍경 중에서도 "가장 기막힌 곳"으로 꼽은 장소는 비봉산 정상이었다.
비봉산은 해발 531m로 높지 않은데다, 주변의 명산 금수산·월악산 등의 그늘에 가려 "기막힌" 전망에 비해 유명세는 그리 타지 않은 산이다. 패러글라이더들에겐 전망뿐 아니라 상승기류가 알맞아, 최상급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장쾌하게 펼쳐진 겨울 청풍호 풍경과 함께 즐길 만한 제천 일대의 볼거리 체험거리들을 둘러봤다.
호수 한가운데 뜬
섬처럼 느껴지는 비봉산 위용
사통팔달 전망에 가슴 후련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물길·산줄기 비봉산
'사통팔달'. 해발 531m의 산꼭대기가 이렇게 높고 전망 좋은 곳인 줄 왜 몰랐던가. 봉황이 나는 형상이라는 비봉산, 정상 활공장에서 만난 청풍호 풍광은 말 그대로 거칠 것이 없었다. 굽어보면 골마다 들어찬 물길이 만들어낸 눈 덮인 반도들이 물갈퀴처럼 뻗어나가는데, 눈 들어 보면 연무 속으로 산줄기들이 겹겹이 껴안고 누워 조용했다.
남쪽으론 월악산 영봉과 주흘산·박달산 등이, 북쪽으로 작성산·금수산, 그리고 동쪽의 소백산 비로봉까지 아득하고 또 까마득하게 눈에 잡힌다. 단양 쪽에서 흘러온 남한강 물줄기와 충주댐이 가둔 물이 구석구석 스미며 비봉산을 감싼 형세로, 사방을 휘둘러보노라면 마치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 뜬 섬처럼 느껴질 정도다.
비봉산은 봄가을이면 산행객 발길이 잦지만, 겨울엔 뜸해진다. 산은 작아도 일부 구간은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할 정도로 가파른데다, 눈이 덮이면, 아이젠·스패츠를 착용해도 산행이 매우 힘겨워지기 때문이다. 봄가을 왕복 1시간30분~2시간 정도의 산행 시간이 겨울이면 두 배로 늘어난다. 하지만 2012년 8월 관광객용 모노레일이 설치돼 봄~가을엔 편하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비봉산엔 2개 라인의 모노레일이 있다. 2007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만들며 개설한 기계식 모노레일과 관광객용 전기식 모노레일이다. 기계식은 활공 때에만 운행하고, 관광객용은 봄~가을에만 운행한다.
청풍호 둘레길 걸으며 명소 탐방 '자드락길'
청풍호반 경치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으로 최근 개설돼 탐방객들이 늘고 있는 '자드락길' 트레킹이 있다. 제천시 쪽은 청풍호 주변의 마을과 볼거리들을 잇는 7개 구간의 트레킹 코스를 만들고 '나지막한 산기슭에 난 좁은 길'을 뜻하는 자드락길로 이름붙였다. 멋진 청풍호 전망대와 용담폭포·얼음골·능강계곡 등 빼어난 경관, 정방사 등 고찰, 산야초마을 등 체험마을 같은 호수 주변의 주요 볼거리·체험거리들이 대부분 자드락길 코스에 꿰어 있다.
향교 앞 교동 골목골목
재미난 벽화들 행렬
예스런 정취에 정겨움 더해
옥순봉과 옥순대교 쪽 경치가 아름답다는, 제6코스(괴곡성벽길) 일부 구간을 걸었다. 눈이 많이 오면 고립된다는, 3가구가 사는 다불리 지나, 전망대와 '사진 찍기 좋은 곳'에서 바라본 옥순대교 쪽 풍경이 그럴듯했다. 희끗희끗 눈에 덮인 옥순봉·구담봉과 금수산·소백산 등 산봉들이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면, 금가고 깨지면서 꽝꽝 얼어붙은 물길은 갖가지 추상화를 펼쳐 보인다. 잡목 우거진 고요한 숲길에선, 물길이 얼어붙어 옥순대교 앞에서 멈춰선, 단양 쪽에서 온 유람선에서 들려오는 관광해설사의 확성기 소리까지 또렷이 잡힌다.
travel tip
약초 명품 밥상 맛나네
▣ 가는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나들목(시내) 또는 남제천나들목(청풍호).
▣
먹을곳
제천은 약초의 고장. 약초와 산채를 이용해 밥을 짓고 반찬으로 내는, 명품 밥상 식당이 많다. 신월동의 대보명가(043-643-3050)는 여자 밥, 남자 밥을 구분해 돌솥에 지어주는 약초밥 전문점. 여자 밥엔 혈행을 돕는 당귀 등 8가지 약재 달인 물을 쓰고, 남자 밥엔 원기를 돋워주는 천궁·백초 등을 쓴다. 서울 수유동에 지점도 냈다. 약초밥상(사진) 1인 1만2000원, 한우약초떡갈비 1만5000~2만2000원, 한우약초쟁반 5만5000원. 청풍면 신리의 예촌(043-647-3707)은 제천시가 만든 약채음식 브랜드 '약채락' 지정음식점. 정식 1인 1만5000~2만5000원, 곤드레나물밥 1만원, 약채떡갈비 정식 2만원. 금성면 중전리 하마가든(043-651-5613)은 30년 넘게 약재를 이용한 닭백숙·오리백숙을 다뤄온 집.
▣
묵을곳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청풍리조트 힐호텔 주중 8만4000원, 주말 9만8000원. 레이크호텔은 주중 9만1200원, 주말 10만6400원. (043)640-7000.
따뜻한 시내 골목길 교동 벽화마을
교동이란 동네는 대부분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가 있거나 있었던 마을을 가리킨다. 제천 시내를 거친다면, 제천향교 앞동네인 교동 골목 탐방에 나서볼 만하다.
낮은 담벽으로 이어진, 허름한 주택들이 낡은 대문을 마주하고 선 골목길마다 밝고 맑고 정겨운 그림들이 가득한 동네다. 2009~2010년 제천민예총이 주관해 벌인 옛 가옥 밀집지 환경개선 사업으로 벽화마을이 만들어졌다. 대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달라붙어 작업한 결과, 낡고 후줄근하던 시멘트 동네가 밝고 환해졌다고 한다.
육거리의 인덕하이퍼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뭐, 별 볼 것도 없다"고 했지만, 전국에 만들어진 수많은 벽화마을 중에서, 그림으로 치자면 그중 재미있고, 찾는 이로 치자면 그중 적은 동네일 성싶다. 길은 얼어붙었어도,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는 동안, 온기가 느껴지는 다양한 그림들이 이어져 발이 시려오지는 않는다. 노상방뇨하는 아이와 벌 받는 아이들, 영감을 부르는 할머니, 창문을 안경 쓴 눈으로 삼아 그린 얼굴, 창틀을 텔레비전 삼아 그린 안방 모습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여섯개의 골목길이 모여들어 겨울 햇살을 쬐는, 육거리 한복판에 서서 한바퀴 몸을 돌리면, 참으로 보기 드문 옛 거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고 낮은 집들과 담벽들, 거기 그려진 정겨운 그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이다.
이밖에 제천 여행길에 둘러볼 만한 곳으로, 수몰지의 문화재들을 한자리에 모은 청풍문화재단지, 청풍호 전망이 아름다운 또다른 장소인 금수산 자락의 고찰 정방사, 각종 약초를 이용한 천연 염색을 체험할 수 있는 하천리 산야초마을 등이 있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수리시설의 하나인 의림지에선, 1월17~20일 '의림지 겨울민속대제전'이 열려, 갖가지 겨울놀이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얼어붙은 의림지 호수 위에서 벌어지는 행사다. 얼음구멍 뚫고 잡는 공어(빙어) 낚시, 연날리기, 장작 패기, 썰매타기, 모닥불 피우기, 짚공예품 만들기 등이 진행되고, 알몸마라톤대회·공어빨리먹기대회·얼음조각가족경연대회도 벌어진다. 행사장엔 약초 등을 이용한 향토 먹거리 장터와 몸을 녹일 수 있는 족욕쉼터도 마련된다.
제천=글·사진 이병학 기자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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