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생활
여기는 저가 군대생활의 일부분중 오래된 사진을 통해
전우들의 소식도 들을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서
빛이 바랜 사진들이지만 올려봅니다.
혹여 아시는분이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1970년11월 17일 제2훈련소(논산) 입소.
7X 5R 2bn HQco (주특기 802) 근무함.
1973년9월27일 병만기 제대
논산서 훈련을 마치고 최 전방 화천에 있는 7사단 훈련대에 배치됨.
여기서부터 훈련도없이 취사병으로 혼자만 차출되어 훈련받는 동기들의
힘든 훈련과정을보며 가짜 기관병으로 있으면서 사단 병참부로 쉽게말해
사단 훈련대 수송분야를 함께 담당하면서 취사병이 되었어요.
그때는 같은 전우들의 우상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감히 훈련병이
어디 기관병이라 속인다고요? 당시에는 출입증을 훈련대에서 만들어
주니까 저는 헌병초소를 자주 드나드니까 다들 기관병으로 알드라고요.
그 과정은 너무 재미있었다는 사실, (당시 재미있던일은 기회가오면 다시...)
훈련을 마칠때 어디로 가고싶냐고 묻기에 아무되나 좋다고 했다.
배치 담당관의 말은 세상에 좋은곳으로 보내준다고해도 마다하니
5연대 2대대 취사병으로 가면 좀났겠다며 그리로 특명을 내려서 저는
고맙다고하며 그리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혼자만 5연대2대대 본부도착, 모두가 낮선 곳이고 세상에는 다들 고참이고
쫄병은 내 혼자기에 상항실에 신고를하고 내무반으로 갔다. 이제 여기서 3년동안의
병역의무를 마치는곳이다. 내무반 신고식에 다들 고참이라 관등성명으로 큰소리로
신고식 무사히 마침, 관물을 정리하고 사열이 있었는데 담당일직 사령관왈:
너 신병! 깜짝놀라며 큰소리로 대답하니 너 돈 얼마쓰고 여기 왔느냐고한다.
나는:아닙니다. 정말 겁났다. 속으로 나는 돈안썼는데 하면서 무사히 사열이
끝나고 이튼날부터 취사장으로 갔었다. 또 신고식... 여기 전우들은 군인같지가 않았다.
계급장도없고 신발도 스리퍼다. 아니 대대취사가 말로만 크다고 들었는데
식수인원이 매끼마다 1200면 이상. 12명이한다. 병들의 우상이라고할까 취사병의
껏발이 이렇게 세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작게준다고 병사들에게 욕먹는것이
좀... 하지만 군대는 어쩔수없다. 사방 한자도 안되는 배식구로 좀더달라는 소리에
밥을 주지 않을수도 있다. 이게 당시의 현실이니까 여기서 혼자만이 취사주특기
802를 부여받고 군 생활을 하게되었다. 그래도 너무 편하게한 군생활이다.
나는 군생활에서 거의 정장 군복을 입은것은 사진을 찍던가 휴가때에만 입었다.
사진에 보듯이 취사병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전우들은 함께한 취사병들의 모습.
특히 이중에도 취사 주특기를 가진 전우는 두세명 뿐이다. 취사복은 필수며
훈련기간에만 군복을 입어도 계급은 달지 않는다. 신발도 스리퍼다.
우리가하는 취사에서 식수인원(식사인원수)은 매끼니마다 1200명 정도다.
이보담 더많이 있을때가 더 많았다. 왜 그리많냐고 물으신다면 일개 대대병력과
포대병 새로온 신병과 파견병까지 정말 많았다. 세끼를 먹인다고 하면은 하루에
식수인원이 3600명은 넘는게 사실이고 12명의 취사병이 이를 해결해야한다.
그래서 대대취사병하면 하사관과 중대장급의 장교분들도 마구 대하질 않았다.
요즘이야 중대나 소대 분대별로 자유급식이지만 당시에는 주는되로 먹어야했기에
작게주어도 항의를 할수 없었다. 특식도 우리가 나누어 주기에 말이다.
이글을 보시면 거짓말같이 보일지 몰라도 당시엔 이보담 더했다는걸 아시는분은
잘 아실겁니다. 대대장님, 연대장님, 사단장님과 군단사령관님, 높으신분이 방문하시면
제일먼저 찾는게 취사장입니다.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곳이 취사장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소흘한것은 절대아니고 훈련 받다가 배고픔보다 더한건 없다고 봅니다.
이 모든 배고픔을 해결한 그때의 전우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백암산 505 OP에서... 1971년8월14일
1973년 1월5일 단거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과 눈을 맞으며 한컷...
좌로부터(정인청(당시 서울) 표성권(당시 시흥) 기영석(예천)
1971년5월 구만리 유격장에서... 뒤로보이는게 구만리 수력 발전소다.
좌로부터 기영석 김명석(당시 평택)
수송대에있는 군대동기 좌로부터 기영석 이종창(예천)
그때는 무서울게 없었고 배에는 王자가 보였는데...
당시만해도 사진병이 찍은 사진이지만 사진기술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빛이 바랜 사진이다. 좌로부터 기영석 김명석(시흥) 1973년7월20일
백암산 505 OP 에서... 8중대에서 파견나온 이영희(?)
휴식시간에 장난치는 김혁태(안동) 많이 친한 전우이다.
1971년5월 구만리 유격장에서... 뒤로보이는게 구만리 수력 발전소이다.
백암산 505 OP에서 나무 바리켓(울타리)에 잠시 찰칵...
여름 어느날 계곡에서 야생화 꽃을 한다발 꺾어 보았다.
1973년 8월20일 칠성초소 찦차 앞에서 좌로부터 김혁태(안동) 뒤에 전인수(전남 담양)
앞에 기영석 우측 이종창(예천) 전우들이다.
1972년 5월 1일 좌로부터 기영석 (?) 김영국(당시 경주?) 김용범(당시 대구) (?)
7X 5R 2BN HQco 대대취사 식수인원 1200명의 식사를 책임지고있는 취사병의 전우들이다.
좌로부터 장인우(청송 파천) 김혁태(안동) 박판쇠(당시?) 표성권(시흥) 박재봉(?)
정인청(서울) 박하동(당시 인천?) 기영석(예천) 이 전우들을 만나보고싶다.
군견이다(세퍼드) 김혁태와 기영석
일병시절의 기영석 잠시 계곡에서...
케레바50초소에서 좌로부터 김명석 최지선(당시 강릉?) 기영석
하루에도 수십통의 펜팔 편지가 도착했다. 애인으로부터... 펜팔로 맺은
아가씨들... 펜팔로 맺은 누나와 여동생이... 전우의 소개로...
당시에는 왜 그렇게도 많은 편지가 왔듣지 몰은다. 지금 그때의 그분들을
다시 만날수가 있다면 추억을 얘기하며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
그때가 너무 그립다...
1972년 6월 14일 본부중대 전우들이 유격장을 향해서... 여성구(?) 이동태(?) 정인청 최홍열(?)
서있는 좌로부터 김영국 김종학 김관직 백상기 앉아있는 뒷줄 이학표 표성권
앞줄 좌부터 김혁태 기영석 김용범
단거리에서... 김영국과 기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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