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책 제목처럼 '무소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법정스님이 지난 11일 입적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것이야 스님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일테니 차치한다면, 다비식 등 장례 절차는 스님의 유지대로 최대한 검소하게 치러졌다. 사리도 찾지 않고, 탑도 세우지 않기로 했고, 나머지 장례 절차도 조용하게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겨, 스님의 <무소유>를 '소유'하려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기까지 했다. 법정스님의 삶이 '품절'됐듯이 법정스님의 책도 '품절' 사태를 맞았다.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공수래 공수거'의 철저한 '언행일치'를 보여준 삶이다.
법정스님의 입적은 단순히 한 스님의 죽음이 아니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탐욕과 맞선 시대의 스승이었다. 지금까지 330만부나 팔렸다는 <무소유>는 한 권 한 권이 탐욕의 졸음을 참지 못하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죽비였던 셈이다. 그 책들의 독자들은 법정스님에게 매 맞기를 자처한 사람들이었다.
'무소유' 만큼이나 스님의 삶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었던 것은 '소리없는 실천'에 있다. 매절 원고료를 받았던 <무소유> 책의 인세를 뒤늦게 달라고 해 출판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도, 매년 2~3월이면 인세 지급을 독촉했던 것도, 그 돈으로 '배움'을 이어나가는 학생들 때문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수십년간 수십억원에 달하는 인세 등 수입이 어디에 쓰였는지 정확히 아는 이가 없다고 하니, 그러고도 정작 본인의 아팠을 때는 돈을 빌려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하니.
11일 오후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는 법정스님의 입적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법정스님 저서를 항상 가까이에 두시고, 또 항상 추천도서 1호로 꼽았다. (이 대통령이) 스님의 저서 중 <무소유> 같은 경우는 여러 번 읽으셨고, <조화로운 삶>에 대해서도 2007년 말 추천한 바 있다"고. 청와대는 "대통령께서는 해외순방을 가실 때나 휴가를 떠나실 때 항상 법정스님 수필집을 지니고 가셨다"며 이 대통령이 법정스님의 열렬한 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읽었다는 <조화로운 삶>은 뒤늦게 책 이름이 아니라 출판사 이름이라는 게 밝혀져 입길에 올랐지만, 시비 걸 일은 아닌 것 같다. <맑고 향기롭게>라는 책 제목을 헷갈린 게 뭐가 대수랴. 누구나 그런 실수는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무소유' 정신을 가르쳤던 법정스님의 생각을 진심으로 가슴 속 깊이 되새기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다. 해외순방이나 휴가 갈 때도 항상 챙겨서 읽었다는, 그래서 <무소유>는 책이 닳을 정도로 읽었다는 이 대통령은 법정 스님의 책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스님 입적 전후에 벌어졌다.
[#1] '왼손이 하는 일'이라는 청계재단 장학사업의 대대적인 보도
법정스님이 입적한 다음 날인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장학재단인 '청계재단'은 첫 장학생 451명을 선발해 총 6억4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청계재단 송정호 이사장(전 법무부 장관)은 "장학금 지급을 위한 별도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조용히 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MB 청계재단, 첫 장학생 451명 선발' 기사는 그날 '귀신같이 왼손이 한 일을 찾아낸' 대다수 신문·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그 기사를 다루지 않은 언론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해당 기사에는 청와대 참모의 말을 빌어 "이 대통령의 재산 기부는 어제 입적한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배경 설명까지 자세히 알려졌다. '각본없는 드라마' 치고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소리소문 있이 대통령의 선행이 온국민에게 알려졌다.
지난 14일 언론들은 '더이상 내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유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중이라며 법정스님 책이 품절 사태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그 기사 가운데 하나에는 이런 귀절이 나온다.
"1976년 첫 출간된 <무소유>는 330만부 넘게 팔려나간 인기 도서이자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검소하며 단순한 삶을 권하는 내용으로 스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대표작이다. 출판사들은 법정스님이 책 인세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지 않았나 추측할 뿐, 스님이 직접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을 겉으로 내비친 적은 없다고 전했다. 범우사 김영석 실장은 '스님이 인세로 좋은 일을 하셨고 맑고향기롭게 일에 쓰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일에 쓰신다는 건지 말씀하신 적은 없다'고 말했다."
[#2] 법정스님 입적한 날, 정권 비판적인 봉은사 명진스님 축출작전 시작?
법정스님이 입적한 11일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은 서울 강남의 대형사찰인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했다. 봉은사 주지인 명진스님은 물론 수십만명의 신도들 뜻과는 배치되는 일이었다. '설마, 설마'했던 일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그 이전부터 조계종 총무원이 이명박 정권의 압력을 받아 정권에 비판적이어서 눈엣가시였던 명진스님의 입지를 없애려고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던 터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명진스님은 14일 오전 일요법회에 참석한 1100여 명의 신도들 앞에서 "갑자기 여러분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면서 "저도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는가, 내가 참 부덕하구나'라는 자괴감과 함께 봉은사 신도들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
명진스님. ⓒ 최경준
"이제 좀 절이 되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아, 이제 내가 낸 시줏돈을 자기들 맘대로 쓰지는 않는구나' 생각하게 됐는데……. 봉은사 같이 신도들이 많은 절을 맡으면(주지스님이 되면) 어떻게든 개인 돈을 만들어 나간 뒤, 자기 절을 지으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정말 봉은사를 아름다운 절로, 여러분들이 신심있게 기도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그런 절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부처님 전에 부끄럽지 않은, 신도들에게 사랑과 존경받는 주지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오고가면서 바라보는 여러 신도님들의 눈빛을 보면서, 오늘날 이 사태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 또 신도들에게 이런 상처를 남겨줘야 되는가, 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가, 그 생각을 하면….
직영 사찰에서는 총무원장이 주지가 되어 직접 운영을 하고, 파견 나가 있는 사람은 '재산 관리인'이 된다. 총무원장은 기분이 나쁘면, 아니면 쓸 돈을 안 올리면, 언제든 재산관리인을 쫓아낸다. 몇 개월만에도 바꾸고, 1년만에도 바꾼다. 말 잘 듣고, 용돈 잘 갖다 주면 2년도 하고 3년도 하고, 이게 직영사찰이다. 그동안 사찰 주지 임면 과정에 바깥으로 내보일 수 없는 검은 거래가 있었다. 그런데 봉은사 같이 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면 그런 거래는 끊어진다. 그게 불교가 사는 길이다."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준엄한 비판을 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찾아 위로하고 1억원의 성금을 기부했던 명진스님을 '반정부 세력'으로 판단해 청와대가 명진스님 축출작업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돈 지 몇 개월만에 이뤄진 일이다. 물론 청와대 개입설은 아직 '설'일뿐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사자와 봉은사쪽에서는 '봉은사 직영사찰' 건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3]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사유'했고, MB는 '무사유를 소유'했나
2008년 4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정도 된 때다. 법정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우고 실제 진행하려고 시동을 걸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법정스님은 대중법회 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옛말에 일각수(一角獸), 즉 '뿔 하나 달린 짐승'이 온 세상을 파헤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제 보니 포클레인이 아니냐"며 "정치인 몇몇이 신성한 국토를 자기 생각대로 파헤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법정스님은 "삼면이 바다이고,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운하는 타당하지 않고, 미국과 유럽도 물류기능을 철도 쪽으로 옮겨갈 만큼 운하는 세계적으로도 사양화하고 있다"며 "운하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직 땅값 오르기를 바라는 투기꾼들과 일부 건설업자들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만약 운하 건설을 우리가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이 정권과 함께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총선 공약이었던 '뉴타운'에 대해서도 "국민을 기만한 비열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안티 포클레인', '안티 콘크리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이명박 정권은 사실상 대운하의 전 단계인 4대강 사업을 강행 처리하려고 해 곳곳에서 마찰음을 빚고 있다. 불교는 물론 카톨릭도 교계 차원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경단체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밀어붙이기식' 4대강 사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후보 시절은 물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책이 닳을 정도로' 법정스님의 생각과 철학을 배우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법정스님이 그토록 반대하며 다시한번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던 사안에 대해 '묻지마'와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동일인인가? 우문 아닌 우문이 가시지 않는다.
법정스님 입적 기사에 어느 한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MB의 무사유'라고.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사유'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무사유를 소유'했다는 뜻일 것이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이 무소유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무사유를 실천하는 건 끔직한 일이다. 비록 무소유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무사유를 실천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제가 법정(法頂) 스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 중학교 때 그러니까 1977년정도였습니다.
저보다 일곱 살 많은 작은누나가 대학 국문학과를 다니는 문학 지망생이었고, 저는 누나가 보는 책을 슬금슬금 훔쳐 보는 데 재미를 들이고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책 <무소유>가 아마 누나 책꽂이에 있었나 봅니다. 책을 꺼내어 읽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려고 나루에 갔다. 그런데 나룻배가 이미 저만큼 앞에 둥실 떠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때면 아휴 늦었구나,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이렇게 여기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참 일찍 왔구나 하고, 다음 배를 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이 여기서 하고자 하신 바가 매임을 버려라, 집착을 하지 마라 이런 얘기인 줄 짐작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무슨 이런 허황된 얘기가 다 있어.' 이러면서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뒤로 법정 스님의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무소유>가 인기를 끌어도 다만 책이 많이 팔려서 누구누구는 좋겠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무슨 '장삿속' 비슷하게만 여긴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쉬 가시지 않았습니다. 김용옥이 쓴 <금강경 강해>를 지난해 읽으면서도, 거기서 김용옥이 법정 스님을 일러 '우리나라 불법(法)의 절정(頂)'이라는 투로 일렀을 때도 그냥 '그래? 그래서?' 하는 마음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스님이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님이 유언에서 <무소유>를 비롯해 당신께서 쓰신 책을 모두 더 이상 내지 마라고 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논란이 되더니 법정 스님 제자들이 유언을 받들어 모든 책을 절판하겠다는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한겨레> 16일치에서 관련 기사를 읽었지 싶습니다.
15일 저녁 알고 지내는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법정 스님 얘기를 하셨습니다. "법정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무소유'를 들고 있었다. '무소유'든 무엇이든, 그것을 놓지 못하면 모조리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 된다."
이어서 얘기하셨습니다. "부처를 알리는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무소유'를 들고 놓지 못함으로써 법정은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이번에 더 이상 책을 내지 마라 한 것은 그 '무소유'조차 '무소유'로 돌려보내는 셈이다."
화들짝 끼침이 왔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무소유' 하나만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소유를 소유'함으로써 세상 통째로 소유하고 말았습니다.
속된 말로, 무소유라 하면 마치 법정 스님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세상 물정이 바로 이를 방증합니다. 무소유 하나로 법정 스님은 당신 뜻과는 달리 크게 되셔 버렸고 이것이 스님에게는 갖은 족쇄가 됐을 것입니다.
이제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무소유를 소유하지 않게 됐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소유의 영역에도 머물지 않고, 무소유의 영역에도 머물지 않게 됐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스님은 '당신의 무소유'로 쌓을 수밖에 없었던 업(業)에서 놓여날 수 있게 됐을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법정 스님 무소유의 뜻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알아차렸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물론 법정 스님이 생전에 냈던 책은 어떤 식으로든 떠돌아 다니면서 유통이 될 것입니다. 출판업자들이 <무소유>를 비롯한 스님의 여러 책들을 계속 찍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해도, 헌책방 등등에서 스님의 책들이 끊임없이 유통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 더 뻔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책이 귀해져서 더욱 비싸게 거래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스님이 '절판'을 유언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그렇게 돌아다닌다 해도 그것은 스님이 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스님의 업이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스님 관련 책의 생산과 유통은 법정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하는 바가 됐습니다. 업이란 하는 데 따라서 가고 짓는 데 따라서 생기는 법이니까, 그 업은 법정 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간단합니다. 스님의 책 <무소유> 등등은 세상을 계속 돌아다닐 것입니다. 돌아다닐만큼 돌아다니고 나면 잦아들고 또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입니다.
스님은 갔습니다. 그에 걸맞게 스님의 책도 보내면 됩니다. 그러고 나면, 스님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다른 방식으로, '무소유'를 비롯한 부처 가르침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삼아 일러줄 사람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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