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자연에서 세월 붙잡고 물어봐도
하늘엔 구름 한 조각 맴돌고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뿐이더라
계절은 따라오라 재촉하고
무심한 하루가 덧없이 흘러가는데
흔들리는 찔레꽃이 향기를 토해낸다
황혼에 소중한 여운을 결부 시켜
고뇌하는 내면을 냉철하게 묘사해
내 삶에서 상상의 시를 창작하고
희망으로 채워질 날을 기다리며
내가 나고 자란 이 땅 이곳에서
글 밭을 가꾸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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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옵니다 외 9편
● 1번
봄은 옵니다 / 기영석
하늘도 서러운지
온종일 눈물을 흘리고
햇볕과 바람도
겁에 질려 숨었나 봅니다
봄도 오다가 주춤합니다
애꿎은 새싹과 꽃도 숨죽이고
잠들면 무서울까
차라리 잠들지 않으려 합니다
사이비의 숨김은 나날이 더해가고
소름 끼치는 공포가 밀려들어
이 시간이 두렵습니다
꽃피고 새가 우는 봄이 오면
병마에 힘없이 쓰러지는 이들이
신음하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
행복을 노래하길 소망해 봅니다.
● 2번
산책길 따라 / 기영석
여명이 어둠을 뚫고 해를 띄운다
감은 두 눈을 지그시 뜨고
구부정한 산길 따라
나는 우거진 솔밭으로 들어간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솔향이 온몸을 감싸 안을 때
한 모금의 상큼하고 신선한 공기가
두 팔 벌린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나를 닮은 저 소나무 가지마다
인연의 끈 걸어놓고
고뇌에 멍들었던 삶을 나눌 수 있는
내 영혼이 깃든 그 산책길이 좋다
사시사철 푸르고 굳건한 나무들은
버거운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한없이 나약하고 초연한 나에게
오늘도 그 산을 편하게 오르라 말한다.
● 3번
멈춰선 친구 / 기영석
따뜻한 봄날
외로움 달래려 함께 온 친구
대청마루 벽에 걸터앉아
쉬지 말고 달리라고 일러주었다
두 입으로 밥을 주면
그칠 줄 모르고 움직이는 추는
밤낮으로 양 볼을 때리고
백 팔십 번의 울림이 하루를 알린다
변화의 물결로 조용히 밀려나
끈끈한 정을 떼지 못한 채
어두운 창고 구석진 곳에서
멈춰버린 너를 멍하니 들여다본다
버거웠던 삶을 지켜보면서
긴 세월 한 가족으로 살았다고
가슴 시린 사연을 담아두고
너의 고마움에 활짝 웃음 짓는다.
● 4번
애타는 마음 / 기영석
바닷가 언덕에 홀로 서서
정만 주고 떠나신 임 오실까
저 멀리 바다만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여인이 슬프다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때
밀려오는 파도가 절벽을 때려
전설의 얼굴을 새겨 놓았다
암벽 위에 짙은 단풍 숲이
노을빛으로 치장하고
물결치는 바다에 어둠이 내려
집 찾아 갈매기 떼 날아간다
긴 세월을 바위로 남아서
비바람에 멍이 들고
눈물마저 말라 버렸지만
한 가닥 희망으로 여기에 서 있다.
● 5번
빈자리 / 기영석
언덕길 헐떡이는 숨소리
밀어주니 좋다며 웃어주고
힘듦을 아는지 이정표가 손짓합니다
주저앉아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주름진 외산 돌아 강줄기 바라볼 때
소소리바람이 두 볼을 차게 합니다
지나온 그늘진 삶 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지 반백 년
자식 짝지어 떠나보낸 빈자리에
당신과 나뿐이란 것을 압니다
내 어찌 살아온 삶을 모를까
애물로 살아온 나를 원망하며 살아도
나는 사랑했노라 말하고 싶습니다.
● 6번
남자의 눈물 / 기영석
굴곡진 인생은 노을로 물들고
긴 시간의 터널을 벗어나려고
나 자신을 탓하고 미워했지만
남루했던 삶을 가슴속에 묻어둔다
가난의 설움은 뼛속에 스며들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의 설렘은
왈칵 쏟아지는 미안함의 눈물로
구멍 난 내 가슴을 들쑤신다
햇볕이 차가운 아침을 데우고
며느리의 생일을 잊지 않으려
눈물로 글을 주고받으며
목이 메어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고운 너의 착한 마음을 고이 간직하며
내 삶의 선물로 오래오래 허물없이 살아주고
행복한 가정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 7번
빨간딱지 / 기영석
한 사내의 장밋빛 꿈이
송두리째 뽑힌 날
벼랑 끝에서 몸을 바람에 맡기고
애간장 타는 가슴은 찢어졌다
아픈 기억을 잊으려 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길 잃은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쓸쓸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시련의 슬픈 날은 가고
고목의 초연한 옹이처럼
꼬부라진 인생의 침묵 속에서
그날의 회한에 잠겨본다
달아 구멍 뚫린 빛 주머니의
아픈 기억을 벗어
잉걸불에 던지고
울컥거리는 삶의 애환을 태우며
활짝 핀 숯불처럼 웃고 있다
● 8번
사랑하는 딸, 이화야 / 기영석
정화수 떠놓고 백일치성으로 얻은 너
하얀 달밤에 사뿐 내려온 선녀인가
네 아름다운 모습을 시샘한 재넘이가
장화 홍련 계모처럼 아픔을 주었구나
하늘에서 하얗게 이화우 흩뿌리는 날
만인의 축복 받으며 좋은 짝을 만나
사랑받고 잘 살기만을 빌고 빌었는데
아비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구나
싸늘하게 식어가는 널 부둥켜안은 채
나는 앞이 캄캄하고 억장이 무너진다
아, 대신 죽어서라도 살릴 수 있다면
사랑으로 가슴에 압화(押花)처럼 품는다
● 9번
가슴에 심은 사랑 / 기영석
어머님 먼저 먼 길 떠나보내시고
먼 산 바라보시던
외로운 눈가에는
속울음만 글썽이셨습니다.
아버지 얼굴에 흐르는 침묵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가슴에 묻고 속 태우시는
그리움을 보았습니다.
자식들 잘 살기를 바라며
손 주들 재롱에 웃으시던 모습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 가슴에 담아
오래오래 남겨두렵니다.
남자는 우는 것을 삼가라시며
어려움은 시간이 가면 지나간다는
아버지의 말씀 고이 간직하고
일러 주신 길을 갑니다.
● 10번
잠들지 못하는 이유 / 기영석
이른 새벽 거물거리는 눈으로
미완성의 글을 긁적일 때
밤이 집어삼켰던 해를 뱉으며
여명이 하루의 시작을 알려준다.
찾으려는 마음은 바빠 오고
굶주린 형상들이 복잡한 뇌리에서
뒤엉키며 싸우는 병목 현상은 부족함이다.
힘들어 꿈을 포기하려는 마음과
용기 내어 도전에 성공하려는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돈의 시간이다.
보람은 하나둘 쌓여 희망이 보이고
때로는 슬픔과 기쁨으로
고뇌하는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여
정제된 시작(詩作)을 찾아서 밤을 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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