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랑/◆-幸州奇氏-◆

월 봉 서 원(月 峰 書 院)

기영석 2013. 3. 20. 12:12

월 봉 서 원(月 峰 書 院)

 

 

                       백우산아래 월봉서원이 있는 너브실(廣谷)마을 전경

백우산(白牛山)은 호남정맥의 한 줄기가 끝에서 뭉친 야트막한 산으로 옛날에는 청량산(청량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불가에서 부르는 산명(山名)이다)이라고 불리다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는 푸수적인 이름인 백우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월봉서원(月峰書院)  전경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선생을 봉향(奉享)하는 서원이다. 고봉선생은 행주기씨(幸州奇氏)로 조선 중종 22년(1527~1572) 11월 18일 광주시 소고룡리(召古龍里)(현 광산구 신룡동)에서 출생 하셨다. 

고봉선생은 32세에 문과을과(文科乙科)장원하여 관계에 진출 하였고 성균관대사성, 사간원대사간 등 내직을 두루 거치고 46세에 졸(卒:별세) 하셨다.  덕원군(德原君)에 추봉되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고봉선생의 문집으로는 강연강론을 모은 논사록(論思錄)과 주자문록(朱子文錄)등 다수가 있는데 조선조 성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퇴계 이황선생과의 8년여에 걸친 사칠이기왕복론변(四七理氣往復論辨)은 유명하다.

 

 

                                     망천문(望川門: 외삼문)

월봉서원 앞으로 약300여m 되는 곳에는 영산강의 상류인 황룡강(발원지:입암산)이 금성수로 이렇한 물을 암공수라 하는데 광곡마을을 휘감고 흘러 영산강으로 합류하는 강이 있다. 망천문은 황룡강을 바라보는 문이라는 뜻이리라. 뒤에 백우산이 서원을 감싸 안아주고 앞으로는 황룡강이 서원을 감싸안고 돌아나가니  풍수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이라  말할수 있는 곳이다.

                                    존성재(存省齋)

월봉서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하는 기숙사로서 존성재는 서재(西齋)로서 존성(存省)은 "자신을 성찰한다"는 의미이다.

                                   명성재(明誠齋)

서원은 현재의 사립대학에 해당 하는데 기숙사라고 할 수 있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명성재는 동재(東齋)이며, 명성(明誠)은 "배움에 있어서 밝은 덕을 밝히는데 성의를 다하라"는 뜻이다.

 

                                  월봉서원과 빙월당(氷月當)

빙월당은 월봉서원의 강당이다.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대왕께서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심설월(氷心雪月)의 뜻으로 하사했다고 전해져 온다.

빙심설월(氷心雪月)은 1655년 효종이 고봉을 기린 제문(祭文)에 "그대의 정신은 잘 단련된 금과 같고 윤택한 옥과 같고, 맑은 수월(水月)과 같고 결백한 빙호(氷壺)와 같도다. 가정에 이어 오는 좋은 교훈을 받았고 학문은 정자와 주자를 본받았도다. 기운은 일세를 풍미하였고 이치는 천 만 가지를 꿰뚫었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장판각(藏坂閣)

고봉선생 문집 11권의 판각 474매와 월봉서원강당 충신다, 명성재, 존성재, 유영루 등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고봉 선생의 문집 목판으로 선생의 시문집이 중심인 "고봉선생문집 원집" 3책과 "속집" 2책, 강의한 경전 내용을 모은 "고봉선생문집논사록" 등 총 474매이다.

                                                      정안문(靜安門: 내삼문)

이곳 내삼문을 지나면 고봉 선생을 위패를 모신 사당이니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는 듯의 정안문이다.

                                           숭 덕 사(崇 德 祠)

고봉 선생을 배향한 월봉서원 사당이다.

선조 11년(1578년) 호남의 유림들이 낙암 아래 망천사를 세워 신패를 모시고 석채례를 행하여 봉향하였다. 지금도 매년 3월과 9월 초에 춘추 봉향하고 있다.

                                                     귀 후 재(歸 厚 齋)

기씨 가문의 전용 서당으로, "귀후"는 "사람이 나이를 들어 학문이 깊어지면 원칙주의보다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게 되다"는 읨ㅣ를 담고 있다. 백두산 홍송을 가져와 지었다고 한다.

                                                     신 도 비

                                                 월봉서원 교육체험관

시민과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낙   암(樂   庵)

광산구 신룡동에 위치하며 고봉선생께서 44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성리학을 강론하던 곳이고 이름은 퇴계 이황 선생이 고봉 선생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가난할수록 도를 즐겨야 한다"(빈당익가락:貧堂益可樂)는 말에서 낙암이라 했다 한다.

                                                          낙   암 (현판)

                                           고봉 학술원 비

고봉의 13대 후손인 기세훈씨가 주축이 되어 1991년에 설립하고여 고봉 선생의 학문을 새롭게 조명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전통(傳統)과 현실(現實)"를 출판하고 있다.

                                                          기세훈씨  고택 정원

                                                  기세훈씨 고택의 안채

                                    애 일 당(愛 日 堂)

애일당은 해남 윤선도 선생 고택녹우당, 구례 운조루와 함께 남도 3대 양택이라 한다.

애일당은 고봉의 후손인 기세훈 박사 고택이자 고봉의 6대손인 기언복이 숙종때 처음터를 잡은 이래 3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전형적인 선비의 정원이다.

 

                                               애일당 대숲

애일당은 사랑채와 안채 뒤쪽으로 넓은 대숲이 조성되어 있어 아늑한 대숲은 청정하고 그윽한 느낌을 준다.

                                        칠 송 정(七 松 亭)

고봉 선생의 장자 기효증씨가 고봉 묘소아래 시묘하던 곳으로 후일 정자를 세워(1587년)묘소에 참배하여 부모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 일곱 주의 소나무를 심어 정자의 이름을 "칠송정"이라 했다고 한다.

                                                       귀전암(歸全庵) 터 (귀전암 유허비)

백우산 청량봉 아래 위치하며 고봉선생이 학문을 강론하신 곳으로 "부모가 온전히 낳아 주시고 자식은 온전한 몸으로 돌아간다"는 증자의 귀전유훈에서 그 이름이 유래 되었다. 현재 터만 남아 있고 귀전암 유허비가 서 있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선생 묘소(墓所)

백우산 중턱 귀전암을 오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월봉서원 청룡자락 중간이다.이 묘소에는 정부인 함풍 이씨와 쌍분으로 묘셔져 있다. 묘소 앞에는 황룡강이 흐르고 그 너머에 안산인 구룡산이

아름다운 풍광이다. 고봉 선생은 손자대에서 후손이  끊기어서 계대(繼代)로 이어져 온다고 하다.

                            고봉 선생 묘소 뒤에서 바라본 구룡봉의 안산

 

※ː광주광역시  문화관광해설사   "이  예  진" 님의 월봉서원과 고봉 선생님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고봉 선생의 묘소까지 직접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안내 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답   사   일 : 2012.5.4~2012.5.5(2일간)

 

                               瀛           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