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랑/◆-幸州奇氏-◆

행주기씨/백과사전

기영석 2011. 11. 21. 01:05

본관은 행주(幸州) 하나뿐이다. 〈행주기씨보〉에 따르면, 기자(箕子)를 선계조(先系祖)라 밝히고 있다. 기자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태사(太師)로 기국(箕國)의 자작(子爵)으로 있다가 주(周)나라 무왕의 침입으로 은나라가 정벌되자 5,000여 명을 이끌고 동천(東遷)하여 기자조선을 세웠다. 그뒤 기자의 41세손인 기준(箕準:哀王)이 위만(衛滿)에 의해서 축출당하고 나서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으로 옮겼다. 다시 그의 7세손 기훈(箕勳)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우성(友誠)은 덕양기씨(德陽奇氏:幸州奇氏), 우량(友諒)은 상당한씨(上黨韓氏:淸州韓氏), 우평(友平)은 북원선우씨(北原鮮于氏:平壤鮮于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기우성은 백제 온조왕 때 시중(侍中)을 지내고,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행주에 세거했다. 그러나 행주기씨는 한때 선대의 족보를 잃어버려 기우성의 66세손인 기순우(奇純祐)를 1세조로 하고 있다. 기순우는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냈다. 고려 중엽 이후 200여 년 동안 크게 융성했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에 따르면, 가구수 7,541호와 인구수 2만 4,385명으로 성씨 중에서 인구순위 8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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