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위기 가능성… 한국엔 치명적일 수도
기상이변으로 가격 급등, 정부의 소극적 대처도 문제 경향신문 이재덕 기자 입력 2012.08.14 21:52 수정 2012.08.14 22:12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으면서 올해 말 전 세계가 식량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소비하는 곡물의 70% 이상을 수입하는 한국도 식량위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14일 농림수산식품부 통계를 보면 사료용을 포함한 국내 곡물 자급률은 2010년 기준 27.6%다. 자급률이 100%를 넘는 쌀을 빼면 곡물 자급률은 더 떨어진다. 보리는 전체 소비량의 24.3%, 밀 0.9%, 옥수수 0.9%, 콩 10.1%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농협은 매년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을 2000만t으로 추산하고 있다. 줄잡아 1500만t을 수입해야, 우리 국민들은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최근 밀과 옥수수는 국제시장에서 t당 320달러, 대두는 610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말에 비해 20~30% 급등했다.
기상이변과 미국 중서부의 가뭄으로 곡물가격 오름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 곡물가격은 통관 및 유통과정 때문에 4~7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반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말 국내 밀가루값이 2분기보다 27.5%, 사료값은 8.8%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석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옥수수나 밀, 콩은 거의 전량을 수입하기 때문에 사료, 축산물, 유지류, 두부, 라면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농식품부는 축산단체 및 제분사료 업계 관계자를 불러 간담회를 열고 곡물가격 안정대책을 논의했다. 당시 농식품부는 "국제가격 상승 전인 6월 중순까지 올해 사용물량의 대부분을 확보해 최소 4~6개월 분량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남미 상황에 따라 국제 곡물가격이 더 뛸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파종을 시작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곡물 생산국가마저 가뭄과 기상이변으로 작황이 안 좋다면 곡물가격이 안정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2007~2008년 곡물위기 때처럼 주요 곡물 생산국이 수출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어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호세 그라시아노 다 실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현재 식량위기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이상기후 등으로 남반구에서도 수확에 차질을 빚는다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당장 밀가루값 급등에 따라 가공식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옥수수 사료값이 크게 오르면 축산농가가 줄도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구조에서 곡물가격까지 급등하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식량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다. 농식품부는 2015년까지 주식 자급률을 70%, 밀 자급률을 10%로 각각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말뿐이었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위기 때마다 정부에서 이런저런 대책을 내놨다가 조금 사태가 진정되면 쑥 들어가곤 한다"며 "이런 대응이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석호 연구원은 "곡물가격이 오르는 주기가 예전엔 10년이었다면 이젠 1년~1년6개월로 점차 짧아지고 있다"며 "장기적인 대비를 하지 못한다면 결국 한국도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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