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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만 울린 ‘배추 로또

기영석 2010. 10. 5. 22:40

변죽만 울린 ‘배추 로또

한겨레 | 입력 2010.10.05 19:5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대전

[한겨레] [현장] 서울시 특별공급 첫날


우림·신원시장 400m 긴줄…7500포기 1시간40분에 동나


"싸게 잘샀다" "싼가격 아냐"…전형적 전시행정 비난도

5일 오전 10시께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우림시장 남문 앞. 쌀쌀한 날씨로 옷깃을 세운 채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400m 넘게 이어져 있었다.

"언제 배추를 파느냐, 이러다 못 사는 거 아니냐." 여기저기서 초조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아침 6시에 나왔다는 이아무개(68)씨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일찍 나왔는데, 품을 들인 만큼 배추를 사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전 11시부터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시장 앞 큰길은 "값싼 배추 물량이 부족할지 모른다"며 새벽부터 나온 주부들과 번호표를 나눠 주며 행렬을 정리하는 시장 상인회 사람들이 뒤섞여 때아닌 몸살을 앓았다.

이날 우림시장과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신원시장에는 모두 7500여 포기의 배추가 공급돼, 1시간4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이 배추들은 서울시가 '배추값 폭등 응급 대책'으로 마련한 것으로, 이날부터 오는 20일까지 서울시내 16개 전통시장에서 모두 1000t(30만 포기)이 공급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3일 이런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중 가격의 70% 수준'으로 공급한다고 홍보했다. 이날 현장에선 "싼값에 잘 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치솟은 배추값에 지친 마음들을 달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이날 우림시장에서는 일부 품질이 떨어지는 배추를 제외하고 대부분 한 망(3포기)에 1만8000원에 팔렸다. 서울시가 4일 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한 망에 평균 2만2700원에 구입한 것으로, 중간 마진과 운송비 등을 보조해 이 가격에서 30%를 깎은 뒤 여기에 시장상인회가 10% 정도의 이윤을 붙여 가격을 정했다.

하지만 아침 6시30분부터 기다렸다는 박아무개(65)씨는 "경매가로 30% 할인이라고 하던데, 3~4시간을 기다린 걸 생각하면 싼값은 아니다"라며 "게다가 한 사람당 3포기밖에 못 산다는 것 때문에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를 따라 나온 윤해원(40)씨는 "서울시가 직거래로 싸게 구입할 줄 알았는데, 경매로 구매한데다 시장상인회 이윤까지 붙이니 소비자가 느끼기에는 절대 싸지가 않다"고 말했다. 윤씨는 "근처 대형마트에서도 1포기에 6000~7000원에 팔던데, 3포기를 사려고 줄까지 서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배아무개(68), 김아무개(66)씨 부부는 "싸다고 해서 왔는데 다른 시장에서도 3포기에 1만8900원에 판다고 들었다"며 "배춧속도 꽉 안 찬 것 같고, 줄이 너무 길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실제 이날 주변 ㅎ할인마트에서 확인한 결과, 우림시장에서 판매된 것과 비슷한 크기의 배추가 3포기에 1만5000원으로 오히려 쌌고, ㅇ대형마트에서는 그보다 좀 작은 크기의 배추가 1포기에 6450원에 팔리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쪽은 "배추는 공산품이 아니라서 품질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대형마트의 경우 미리 확보한 물량이 있을 수 있어 가격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