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지식/☎농업··경제☎

정부, 구제역 반성없이 농민탓…야 “이대통령 실책”

기영석 2011. 1. 28. 23:07

정부, 구제역 반성없이 농민탓…야 “이대통령 실책”

한겨레 | 입력 2011.01.28 20:20 | 수정 2011.01.28 21:40

[한겨레] "국가방역 문제 덮고, 국민과 농민 이간질"


축산업계·야당, '윤증현 장관 망언' 규탄


"MB 무관심이 무능대처 불러" 비판 거세


'책임 떠넘기기'에 반발 확산

정부의 도넘은 구제역 책임 떠넘기기가 축산 농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초동대처 실패, 백신접종 실기, 지방자치단체·군과의 미흡한 협조체제 등 두달 동안 안이하게 대처해온 정부가 과거 정권과 농민들을 탓하는 등 책임 전가에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권에선 이명박 대통령 책임론도 거론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당정청회의에서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을 잡을 마음이 없다"며 축산 농가들의 책임을 거론한 데 대해 야당과 농민단체는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정부의 구제역 매뉴얼을 탓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발언도 농민들을 자극했다.

28개 단체로 구성된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28일 성명을 내어 "구제역 확산의 본질은 보상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방역체계의 문제"라며 "그런데도 정부 보상금이 축산농민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구제역이 확산되었다는 해괴한 논리는 국민과 농민을 이간질하는 분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어떻게 정부의 장관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신문을 보는 제 눈을 의심할 지경"이라며 "농가들이 보상받으면 다시 일어서는 줄 아느냐. 살처분 한번 하면 실제로 3년간 다시 돼지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식 같은 소·돼지를 파묻고 있는 농민을 모독한 윤증현 장관은 조금도 장관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정부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농업 분야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야권은 보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지낸 김성훈 전 상지대 총장은 "2000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며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대처하고 농민들 피해 보상은 기대 이상으로 파격적으로 해줘야 농민들이 방역에 협력을 할 것이라며 즉각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로 행정안전부·국방부·농림부가 함께 총력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옛날 같으면 나라님이 식음 전폐하고 제단 쌓고 위령제를 지내도 시원찮은 게 지금 상황"이라며 "정부가 겸허히 반성해도 부족한 판에 농민들의 소수 사례를 들어 책임을 모면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구제역 해결에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도 야권은 의문을 나타낸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인 정범구 민주당 의원은 "지금과 같은 재앙엔 축산농가,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세 주체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총체적 무능, 이명박 대통령의 무관심이 가장 큰 실책"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눈 많이 왔다고 포항시장한테 직접 전화하고 경제 문제에도 잠바 입고 지하벙커 들어가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왜 구제역 사태엔 행안부·농림부 장관만 기자회견장에 내보내느냐"며 "이 대통령이 자주 말하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목록에 농업은 전혀 낄 자리가 없다. 농업을 오로지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매우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