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부른다 가을이 부른다 / 풍호 기영석 높고 파란 하늘엔 새털구름 한 조각 외롭게 떠서 사라진다 아침 찬 이슬에 채색된 삼라만상이 곱게 치장을 하고 언덕 위 가녀린 들국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은빛 억새는 춤을 춘다 낙엽 지는 잎새의 슬픔도 연모의 긴 사연도 버리고 단풍 든 곳으로 오라 하네 191013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오 남매 오 남매 / 풍호 기영석 어미의 탯줄에 잉태하여 시시각각 태어났지만 여기서 하나가 없다면 삶에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삶에 시달려 이마엔 밭고랑이 머리에는 찬 서리가 내렸으니 남은 인생 계산기가 없더라 희망도 행복도 모두가 허상이고 보이지 않으니 붙잡지도 못하고 구름처럼 강물도 흘러만 가는데 내 몸이 노화인 걸 누구를 탓하랴 다섯 손가락 건강해달라고 돌부처에 합장해 빌었더니 대답 없는 메아리뿐이고 반지의 아픔에 인지가 아파져 온다 190305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소꿉의 첫사랑 소꿉의 첫사랑 / 풍호 기영석 긴 머리 뽀얀 얼굴 반들거리는 까만 눈 뒷동산 솔나무 아래 우연히 정이든 너와 나 해 뜨면 누가 볼라 멀리서 손짓하고 밤이면 만남의 장소 속삭이며 정 주었던 너 옛 추억 아련히 스치고 깔깔되며 웃어주던 너를 철부지 불장난 인연이라고 아린 아픔 가슴속 묻어두고 훗 날 만남을 소원하며 애절한 보고픔 가슴 저미는 밤을. 190413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하얀 물안개 하얀 물안개 / 풍호 기영석 하늘엔 먹구름 드리우고 잔잔한 강물에 소리 없이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강을 동여맨 월영교 아래에는 물 위를 나타났다 지우며 수없이 동전 물결만 일렁인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우산 속 연인들의 뒷모습 아름답고 정겨워 보이는데 물속에서 입김을 토해내며 바람에 일렁이는 물안개가 모든 것을 하얗게 집어삼킨다. 190630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그 옛날 여름밤에 그 옛날 여름밤에 / 풍호 기영석 시골 마당에 멍석 깔아 잡풀로 모깃불 피우면서 둘러앉은 마을 사람들 땀에 찌든 몸을 웅덩이에 목욕하고 우물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시원하게 등목 하니 인심 좋은 이웃사촌 강낭 감자 삶아 오면 개떡 장떡 함께 먹으며 밤이 즐거웠던 그 시절 등불 하나 불 밝혀 밤늦도록 팔 베개 드러누워 깜깜한 하늘만 쳐다보며 반짝이는 별들만 세다가 잠들고 깨어보니 찬 이슬만 남았어요. 190720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어림호 어림호 / 풍호 기영석 고즈넉한 산 위에 하늘호수 하나 산천의 아름다움이 눈을 호강시켜준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 서늘한 바람은 너무 정겹다 쪽빛 호수에 비친 한 폭의 산수화는 거꾸로 매달려 일렁거리고 파란 하늘 조각구름은 물속에서 흘러만 가는데 확 트인 창공을 새처럼 날고 싶은지 삶에 찌든 옆지기가 두 팔 벌려 아~ 너무 좋다 가슴속 응어리 토해내듯 소리친다 190503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두견이의 합창 두견이의 합창 / 풍호 기영석 생동감 넘치는 초록의 계절 멀리서 카랑카랑한 울림의 소리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쉼 없이 슬프게도 울어주는구나 절규의 부르짖음 메아리 되어 귓전에 맴돌고 가고 오는 것이 섭리인 걸 너는 알겠지 바람에 날리는 뿌연 송홧가루가 골 안개처럼 몰아치는 그늘에 앉아 조각난 파란 하늘을 쳐다본다. 190520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미륵이 된 인조 과 미륵이 된 인조 과 / 풍호 기영석 새집 지어 잘 살라며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두 손에 들고 오신 보물 냉장고 위 덩그러니 올려진 두 그루의 나무엔 진짜 같은 인조 과일 십오 년의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우릴 지켜주신 고귀한 마지막 아버지의 선물이다 임 떠나고 없는 빈자리 시아버지의 유품이라며 씻어주고 닦아주는 며느리 고이 간직하려는 섬김에 지금도 변하지 않은 색깔이 너무 곱다 아이들의 볼같이 예쁜 사과 여덟 개 색깔 고운 감귤 여덟 개는 임의 바람일까 현실로 이어진 보살핌의 혼령이 서려 있다 이 아들은 텅 빈 마음으로 온밤을 지새우며 쳐다보고 눈물을 참아 봅니다 거실 공간에서 삶의 단안을 알려주시고 가족의 평안을 지켜주시는 미륵으로 지켜준다는 것을. 190330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님의 안식처 님의 안식처 / 풍호 기영석 오 남매 곱게 길러 짝지어 주시드니 좋은 날 큰 산 양지바른 산기슭에 흙 지붕 집을 지어 가셨습니다 내 딸 시집가던 전날에는 집 앞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지만 문까지 잠겼는지 아무 대답 없더이다 행여 못 들었나 땅을 치며 통곡하니 나목 위의 새들이 푸드덕 떠나가고 소리 내 불렀지만, 눈물만이 위로하네 님 옆에 드러누워 슬픔의 잠 들 즈음 내 새끼 키우기에 바쁜 나날 보내면서 어른 되어 알고 나니 불효됨을 알았어요 눈뜨고 돌아보니 석양의 노을만이 애잔한 목소리로 집에 가라 일러주네 190308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
삼강주막 삼강주막 / 풍호 기영석 슬픈 애환이 서려있는 해화 나무 아래 사각의 집 한 채 길손들의 수많은 사연 담아 노 젓는 뱃사공은 간데없고 해 저문 강둑에서 멍하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며 그리운 님 생각에 얼마나 울었을까 슬픈 사연 가슴에 숯덩이 되어버린 주모는 어딜 가고 보이지 않는다 그님을 흉내 내어 꾸며진 관광지 모여든 주객은 한상 차림 받아 들고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에 취해 횡설수설 하지만 추억만은 남긴다 190323 나의 서재/자작시 201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