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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이 된 인조 과

미륵이 된 인조 과 / 풍호 기영석 새집 지어 잘 살라며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두 손에 들고 오신 보물 냉장고 위 덩그러니 올려진 두 그루의 나무엔 진짜 같은 인조 과일 십오 년의 세월 동안 그 자리에서 우릴 지켜주신 고귀한 마지막 아버지의 선물이다 임 떠나고 없는 빈자리 시아버지의 유품이라며 씻어주고 닦아주는 며느리 고이 간직하려는 섬김에 지금도 변하지 않은 색깔이 너무 곱다 아이들의 볼같이 예쁜 사과 여덟 개 색깔 고운 감귤 여덟 개는 임의 바람일까 현실로 이어진 보살핌의 혼령이 서려 있다 이 아들은 텅 빈 마음으로 온밤을 지새우며 쳐다보고 눈물을 참아 봅니다 거실 공간에서 삶의 단안을 알려주시고 가족의 평안을 지켜주시는 미륵으로 지켜준다는 것을. 190330

님의 안식처

님의 안식처 / 풍호 기영석 오 남매 곱게 길러 짝지어 주시드니 좋은 날 큰 산 양지바른 산기슭에 흙 지붕 집을 지어 가셨습니다 내 딸 시집가던 전날에는 집 앞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지만 문까지 잠겼는지 아무 대답 없더이다 행여 못 들었나 땅을 치며 통곡하니 나목 위의 새들이 푸드덕 떠나가고 소리 내 불렀지만, 눈물만이 위로하네 님 옆에 드러누워 슬픔의 잠 들 즈음 내 새끼 키우기에 바쁜 나날 보내면서 어른 되어 알고 나니 불효됨을 알았어요 눈뜨고 돌아보니 석양의 노을만이 애잔한 목소리로 집에 가라 일러주네 190308

삼강주막

삼강주막 / 풍호 기영석 슬픈 애환이 서려있는 해화 나무 아래 사각의 집 한 채 길손들의 수많은 사연 담아 노 젓는 뱃사공은 간데없고 해 저문 강둑에서 멍하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며 그리운 님 생각에 얼마나 울었을까 슬픈 사연 가슴에 숯덩이 되어버린 주모는 어딜 가고 보이지 않는다 그님을 흉내 내어 꾸며진 관광지 모여든 주객은 한상 차림 받아 들고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에 취해 횡설수설 하지만 추억만은 남긴다 190323

쌍절암의 두 여인

쌍절암의 두 여인 /풍호 기영석 애틋한 사연 담아 암벽에 새겨진 세 글자 순절한 시누이와 올케 한 품어 낙화되었건만 저 멀리 윤슬 위엔 왜가리가 미동치 않다가 절개를 지키려 나래를 편다 음지 샛바람 차가운데 오리들 자맥질 이어지고 애잔한 마음 멍하니 홀 긴 듯 강 건너 외산을 바라본다 슬픔의 눈물은 강물 되어 흐르고 저버린 나라 원망일랑 하지 마소 왜란의 긴 세월 가슴 시린 한을. 190403

그 길

수십 년 동안 신발창이 닳고 닳도록 어머니가 다녔던 추억 속 그 길 병아리보다 더 귀엽고 앙증맞은 발로 아장아장 걷는 예쁜 손주 보며 건강하게 잘 살아달라고 저 멀리 푸른 소나무 아래서 웃음 지며 기도하셨던 어머니 산모퉁이 돌아 좁다란 그 오솔길 초로에 바지 젖을까 조용히 말씀하시던 감미로운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서 맴돕니다 세월 따라 변해버린 그 길 틈틈이 당신의 발자국 따라 뭉클한 가슴 조이며 그날의 추억들이 나를 울립니다. 190215

모란은 피었다

모란은 피었다 / 풍호 기영석 뜰 앞의 청아한 자태 인고의 기다림에 지쳤는지 수줍음의 모습 살짝 보여준다 아주 작은 빨간 핏덩이 초기의 생명으로 잉태하여 하루가 달라지게 만삭의 여인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구나 아름다움에 진취되어 왕자의 품격을 지녔다고 어느 누가 말했는가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벌 나비 들락날락 연애하더니 아름다움은 며칠을 못 견뎌 하나둘 예쁜 옷 벗어던지고 황금빛 속살을 보이려 한다. 190421

울림

밤새 비가 내린다 목마른 대지에 입맞춤하며 생기를 불어넣는다 촉촉이 젖은 산과 들에 어린 새싹들이 덩실덩실 춤추고 배 꽃봉오리가 터질 듯 때를 기다리며 어느 때처럼 솔향에 취해 녹색 꽃이 흐드러진 굽잇길 걷다 노래하듯 짝을 부르는 꿩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꿩꿩 꿩 애타게 부르는 꿩이 내 마음도 함께 울린다 청아한 숲 속 푸른 꽃잎 밑에서 올려다본 파란 하늘 위로 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네. 190322

새 봄

새 봄 / 풍호 기영석 엄마가 다니는 밭두렁 아빠가 다니는 논두렁에도 새싹들이 실눈 뜨고 날 보라며 슬쩍 윙크한다 성질 급한 뒷산 홍매화가 꽃피우고 산소 주변 할미꽃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여 임처럼 반겨준다 들녘에는 이름 모를 작은 노란 풀꽃이 즐겁게 봄노래 부르고 실 개천가 윤기 흐르는 버들강아지 살랑살랑 춤을 추니 박새도 장단 마쳐 날갯짓한다 나비와 벌은 꽃밭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서로 포옹하며 사랑노래 불러주고 푸른 하늘 뭉게구름은 들녘 새봄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낸다. 190315